[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대한민국에서는 가상화폐 상장을 통한 자금 모집이 불법이다. 이미 수많은 가상화폐 ICO(가상통화공개)를 통해 각지 자금을 모아들인 미국과 일본 등의 벤처기업들을 제치기엔 늦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신 산업에 대한 우리 정부의 '규제 편력'이 심하다는 의견이 끊이질 않는 이유다.

최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소재 4차산업혁명연구원에서 최재용 박사를 만났다. 최 박사는 4차산업혁명연구원과 한국소셜미디어진흥원의 원장이다. 그는 정부가 블록체인과 가상화폐에 관해 과단성 있는 규제 개혁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을 비판했다. 그에 의하면 블록체인 미래의 결정권을 쥔 위정자들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자산을 불린 구기득권 세력이다. 이들은 기존 안전자산을 지키고자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의 제도권 편입을 막고 있다. 

최 박사가 말하는 4차산업혁명시대의 정부 역할은 우선 허용하고 사후 규제하는 '규제 샌드박스'와 '포괄적 네거티브'다. "진정 이 나라의 혁신 성장을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블록체인과 가상화폐에 법의 테두리를 만들어 주고 추후 규제와 규제 개혁을 실시해야 한다."

최재용 4차산업혁명연구원 원장
최재용 4차산업혁명연구원 원장

<아래는 최재용 4차산업혁명연구원장과의 일문일답> 

Q. 한국 규제 개혁, 적당한 속도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나. 

- 수개월 동안 규제 개혁이 제 자리에 머물렀는데 논할 거리가 있겠나.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주문한 규제개혁 1호 법안인 인터넷전문은행 특별법조차 일부 시민단체와 여당 이견으로 인해 무산됐다. '하겠다'는 말만 무성하고 '했다'는 말은 없는 '규제 개혁 대란'이다.

Q. 규제 개혁 관련해 진행 속도나 방향이 안타까운 법안이 있다면.

- 규제로 인해 가장 고통 받고 있는 분야는 블록체인인 것 같다. 우리 단체는 최근 일본과 중국, 에스토니아 등을 돌아다니며 외국의 선사례를 살피고 있다. 외국과 우리나라의 블록체인 규제가 어떤 차이를 보이고 있는지 비교하고 반성하게 됐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기획했던 많은 기획개발자들이 싱가포르, 몰타, 스위스 등으로 이주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블록체인과 관련한 규제 자체가 없기 때문에 창업하기 어렵다.

Q. 블록체인은 '규제 개혁'을 논하기 전에 '규제 마련'을 먼저 언급해야 할 것 같다.

- 고위 공무원, 국회의원 등은 디폴트 편향(현상유지 편향)에 빠져 있는 것 같다. 규제 개혁을 이끌어야 하는 고위급 간부들은 정작 신 산업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없다. 이미 여유로우니 절박하지 않다. 이들이 기득권을 침해 당하지 않기 위해선 블록체인과 가상화폐와 관련한 법을 막을 필요가 있겠다.

Q. 블록체인 법안과 기득권층이 어떤 상관관계에 있나.

- 적어도 내 생각은 이렇다. 서민들 사이에서 가상화폐 투자 열풍이 거세지 않았나. 비록 올해 2월부터 사그라들기는 했지만 가상화폐 투자는 여전히 뜨겁고 인기 있는 종목이다. 며칠 전에는 노인 복지관에 교육 강연을 나갔는데 스마트폰을 쓸 줄도 모르는 70대 할아버지가 빗썸 앱을 깔고 계셨다.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상화폐 투자 붐이 일어난 것은 확실하다. 이들이 투자 자금을 가상화폐에 몰아 주면 기득권 세력의 자산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재의 기득권 세력은 가상화폐가 이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전통적인 자산을 기반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다. 즉 이미 기득권인 사람들이다. 반면 서민은 비기득권 세력이다. 서민이 가상화폐에 투자한다는 의미는 가상화폐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뛰어든다는 의미다. 이는 가상화폐 산업의 규모가 커져 주류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주류 산업에서 기득권이 참여하는 비중은 적어질 것이다. 기득권세력은 서민과 권력을 분배하는 것을 꺼린다. 예컨대 조폐공사가 찍은 원화를 관리하는 한국은행은 기득권이지 않나. 하지만 가상화폐가 활황이면 한국은행의 힘은 낮아진다. 각종 정부 기관도 원화를 기반으로 운용된다.

이미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는 정책 입안자들이 가상화폐에 투자는 할지언정 그것을 제도권으로 편입하기 위해 갖은 수를 쓸 이유는 없다. 즉 중앙 권력이 탈중앙화를 기반으로 하는 가상화폐를 응원할리 만무하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가상화폐 상장(ICO)도 불법이다.

최재용 4차산업혁명연구원 원장
최재용 4차산업혁명연구원 원장

Q. 정부는 폐쇄형 블록체인 시스템 시대를 열겠다는데...

- 블록체인 자체가 민주주의와 탈중앙을 지향하는데 정부가 언급한 폐쇄형 블록체인은 중앙화다. 물론 국영 블록체인과 국영 가상화폐 시스템이 갖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이는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정신과 맞지 않다.

폐쇄형 블록체인은 발행 주체가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과 신뢰도를 갖춘 기존 대기업 발행 주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개방형 블록체인은 가상화폐라는 보상에 의해 운용되기 때문에 가상화폐와 개방형 블록체인은 분리될 수 없다. 때문에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한다는 정부의 규제정책은 '개방형 블록체인을 제거하자는' 의미가 된다.

Q. 가상화폐 규제가 어떤 식으로 이뤄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가.

- 정부는 늘 사전에 규제했다. 사후 규제로 바꿔달라. 신사업에 대해선 일단 규제를 풀어주고 한국의 기업들에 기술 개혁의 여지를 줬으면 좋겠다. 진정 4차산업의 혁명을 일으키고 싶다면 '포괄적 네거티브'와 '샌드박스 규제'를 명심해야 한다.

삼성페이나 신일그룹 사건만 봐도 그렇다. 법을 어긴 사람들을 강력하게 벌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을 벌할만한 명확한 법의 테두리가 확립돼 있지 않다. 제도권 밖으로 벗어나는 사람들에게 엄벌을 가하면 된다. 한창 가상화폐가 열풍일 때 정부가 ICO를 합법화해 장려를 했더라면 우리나라에서도 이더리움 반열에 올릴 수 있는 코인 개발자가 나올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규제와 준수 (이미지=The Blockchain Academy)
규제와 준수 (이미지=The Blockchain Academy)

Q. 한국의 신 산업을 책임지는 이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 일전에 고위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SNS교육을 한 적이 있다. 국민, 내부 직원들과 소통하라고 SNS 가입부터 활용까지 힘들게 가르쳤다. 그리고 수업이 끝날 때가 되니까 이구동성으로 "이거 개인정보 보호 됩니까?", "어떻게 탈퇴해요?"라고 물었다. 힘이 빠졌다.

현재의 모습을 반성하고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를 비롯해 다양한 신 산업에 대해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 어찌 4차산업혁명을 책임진다는 정책 입안자의 입에서 '가상화폐는 사행성이지만 블록체인은 육성하자'는 말이 나올 수 있는가. 그만큼 우리나라 정책 입안자들이 신 산업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치싸움에만 혈안이면 안 된다. 다양한 블록체인 업계 전문가를 만나 오픈 미팅을 하고 때로는 밤새워 난상토론도 해 봐야 한다. 정말 배우고 싶고, 배워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최근 에스토니아에 다녀왔다. 모든 시민이 블록체인으로 투표를 한다. 의료기록도 블록체인을 이용한다. 신분증에 의료정보가 있어, 아파서 병원에 가면 해당 의료정보를 스캔해 신속한 의료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작은 병원에 갔다가 큰 병원에 가게 되면 무조건 의료의 첫 단계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에스토니아는 비용과 절차를 줄일 수 있다. 정책 입안자들은 나서서 '블록체인 유람단'을 꾸려 몰타나, 싱가포르 등 해외 선사례를 보고 정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배우며 시야를 넓혔으면 한다. 언제까지 규제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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