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당 최저임금이 2017년 6470원에서 2019년 8350원으로 29%나 크게 오른다. 최근 경제성장률이 약 3%이고, 물가상승률이 약 2%인 것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인상률이다. 이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소상공인들은 다양하게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그러자 중앙 및 지방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 중 하나로 제로페이(카드수수료를 제로화하는 결제시스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카드결제시스템은 재화 및 서비스를 보다 효과적으로 거래하기 위해 수십 년에 걸쳐 발전돼 온 민간영역이다. 현금 등 전체 소비 수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55%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래의 소비를 앞당길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600명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16일이면 월급을 모두 다 소진한다고 한다. 즉, 직장인 대부분은 돈이 부족한 실정이다.

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 산업조직연구실장.
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 산업조직연구실장.

이러한 돈 부족의 문제를 신용카드가 해결해주고 있는 것이다. 설문 응답자의 72.1%는 월급을 다 사용한 후 신용카드를 사용해 버틴다고 답했다. 이런 이유로 신용카드 연 이용금액은 2017년 기준 약 703조원이나 된다. 국내 최종소비 지출액이 약 1048조원인 것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내수의 상당부분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앙 및 지방 정부에서 제로페이를 도입하겠다고 하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민간시장을 공공부문이 침범하겠다는 것이나 다름 아니다.  제로페이는 기존 카드수수료를 크게 인하시켜 결국 기존 카드사업 관련 기업(카드사, 밴사 등)들이 문을 닫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카드수수료는 카드결제서비스에 대한 가격으로 물건에 대한 가격과 같다. 다시말해 카드사는 카드결제서비스를 제공하고 카드가맹점(식당 등)은 서비스 가격으로 카드수수료를 지급하는 것이다. 따라서 카드수수료를 제로화 한다는 것은 물건 가격을 제로화 하는 것으로 카드결제서비스를 공공재로 만들겠다는 얘기가 된다.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인상해 소상공인이 인건비 부담을 갖게 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정책의 하나가 바로 카드수수료 제로화 방안이다. 이러한 논리가 타당하다면, 다른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은행의 대출이자이다. 많은 서민들이 집을 장만하기 위하여 주택담보대출을 받고 있다. 이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중앙 및 지방정부에서 대출이자를 제로화 하는 상품을 도입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시중은행들은 망할 것이다. 시중은행은 돈이 필요한 사람과 돈이 남는 사람을 연결시켜주기 위해 도입된 민간영역이다. 여기에 공공부문이 침범해 금융시장을 훼손하는 것으로 자본주의 근간을 뿌리 채 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후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적폐 청산이란 오래된 관행, 부패, 비리 등을 바로 잡는 것이다. 이러한 적폐 중에 자본주의 질서를 훼손시키고 있는 것이 바로 공공부문의 민간부문 침범이다. 공기업이 자회사를 만들어 각종 입찰에 참여해 수주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공공부문은 공공의 질서와 안녕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된다. 그런데 공공부문이 국민들의 세금을 가지고 국민들이 운영하는 민간부문에 침범해 경쟁한다는 것은 매우 나쁜 적폐이다. 정부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민간영역인 카드결제시스템에 침범해 경쟁한다는 것은 적폐를 없애겠다는 현 정부의 기조에 역행하는 것이다.

카드결제시스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신용카드결제시스템을 카드사가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카드사별로 수십조원의 자금을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려와야 한다. 2017년을 기준으로 평균 자금조달금리는 연 2.31%이고, 전체 자금조달비용만 약 1조6100억원이다. 과히 천문학적 비용이다. 소비자가 식당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3일 이내로 카드사는 결제대금을 소비자를 대신해 식당에 지급한다. 약 30일 이후 카드사는 소비자로부터 카드결제대금을 지급받는다. 약 27일 간의 공백에 대한 이자비용이 발생되는데, 카드사가 이를 선 감당하고 추후에 식당으로부터 받는 카드수수료로 충당하고 있다. 따라서 제로페이 도입은 민간부문의 카드사업 관련 기업(카드사, 밴사 등)을 망하게 하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우선적으로 내세웠던 적폐 청산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제로페이라는 또 다른 적폐를 만드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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