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실례합니다. 잠시 지나갈게요."

분명 로봇에서 나온 말이다. 피자헛에서 피자를 잔뜩 먹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후 다시 테이블로 가려는데 내 앞에서 전진해 오던 서빙로봇 딜리가 멈췄다. 놀란 나머지 나도 따라 멈췄다. 도도한 딜리는 '실례하니, 잠시 지나가겠다'는 말을 남긴채 유유히 나를 비켜 갔다. 방금 로봇이 나를 비켜 갔나? 내가 로봇을 비켜 간 게 아니고? 제 눈으로 목격하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에 어안이 벙벙했다.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감지하고 잠시 멈추는 딜리.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감지하고 잠시 멈추는 딜리.

진화한 로봇 딜리, "감정노동 종사자 부담 덜고, 소비자 체감 편의 증진했다"

로봇이 피자를 서빙해주는 레스토랑이 국내에 생겼다. 피자헛이다. 그리고 서빙의 주체가 되는 로봇의 이름은 바로 '딜리'다.

딜리를 만나러 피자헛에 직접 갔다. 딜리 곁에는 초등학생 무리가 한가득했다. 로봇이 홀로 서빙하고 주행하며 또박또박 말하는 모습이 웃긴지, 너도나도 사진 찍겠다고 난리다. 기자는 아침에 눈을 뜨면 엄마의 알찬 잔소리와 따뜻한(?) 손찌검으로 세상을 맞이하는데, 딜리는 본체 충전 후 작동되자마자 피자 조각을 건네주는 아이들이 곁에 있다니. 인간으로서 자존심 상하지만, 로봇 대스타의 하루가 부럽기도 했다.

딜리 상층부에 피자를 담는 플레이트가 있다.
딜리 상층부에 피자를 담는 플레이트가 있다.
얼짱 각도에서 찍어도 무리 없는 딜리.
얼짱 각도에서 찍어도 무리 없는 딜리.

단백질 충전을 위해 치즈가 듬뿍 들어간 피자를 시켰다. 이윽고 딜리가 피자를 업은 채 테이블 가까이 와서 "음식 가져왔어요"라고 말했다. 기자는 딜리 플레이트에서 피자를 빼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딜리는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 한 마디와 함께 도도하게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일부 상황에 국한해 미리 녹음해 둔 말들이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꽤나 재밌었다. 향후 기술을 보완해 소비자와 대화를 주고 받으며 간단한 요청을 받을 수 있는 단계로까지 이어진다면 그야말로 장관일 터였다.

기자는 평소 패스트푸드 음식점이나 레스토랑을 갈 때 매번 점원을 부르기가 민망했다. 숟가락이나 나이프를 실수로 떨어뜨렸거나, 여분의 물티슈가 필요할 때 바쁘게 돌아다니는 점원을 부르자니 영 내키지 않았다. 로봇이 이렇게 간단한 심부름들을 이행해 준다면 고객 입장에서는 반가울 일이다. 또 현대 사회는 개인주의가 유행처럼 번져 인간보다는 무인 기계와 대화 나누는 것이 차라리 편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직원들은 딜리로 인해 업무 중간 잠깐의 휴식을 드문드문 가질 수 있다.
직원들은 딜리로 인해 업무 중간 잠깐의 휴식을 드문드문 가질 수 있다.

딜리가 하루에 몇 번 정도 왔다 갔다 하느냐는 질문에 점원은 "최소 80번에서 최대 100번 정도"라고 답했다. 점원이 딱 100번만큼 덜 움직였다고 생각하니, 효율성의 크기가 짐작됐다. 레스토랑의 서빙 직원들은 늘 바빠 보였다. 그들이 100번 덜 움직일 수 있다면, 얼굴에 드리운 먹구름도 조금은 걷히지 않을까.

어느 모로 보나 서빙로봇의 도입은 꽤 괜찮은 선택인 듯하다.

현장실습 잘 마친 딜리... "요식업계에서 서빙로봇이 상용되는 그날까지 가즈아"

딜리 플레이트(이하 딜리)는 우아한형제들과 한국피자헛이 합작해 만든 '자율주행 레스토랑 서빙 로봇'이다. 이달 19일까지 피자헛 목동중앙점에서 시범 운영됐다. 

서빙 로봇 딜리는 피자헛 매장 안에서 테이블 사이를 자율주행하며 음식을 나른다. 딜리는 이동 가능 동선을 지각하여 미리 최적의 코스를 맵핑하는 스마트 내비 기능을 갖고 있다. 점원이 딜리 플레이트에 피자를 올려 놓으면, 최적의 경로로 움직여 고객이 있는 테이블까지 음식을 서빙한다.

장애물이나 사람을 마주치면 먼저 멈춘 후 피해 간다. 움직이는 속도 역시 보통 사람이 걷는 속도와 흡사하다. 또 본체 상단 플레이트를 통해 한 번에 최대 22kg의 음식까지 나를 수 있다.

성호경 배달의민족 홍보실 책임에 따르면 딜리의 두 바퀴에는 개별 모터가 달려있다. 그래서 유영하듯 자유롭고 부드러운 움직임이 가능한 것이다. 또 그는 "딜리에는 2D-Lidar와 3D 카메라가 동시에 사용돼 센티미터 단위의 정교한 주행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딜리는 1회 충전으로 최대 8시간 지속 주행이 가능하다. 피자헛 운영시간이 오전 11시부터 오후 11시까지인 점을 감안할 때 지속시간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1회 충전으로 하루의 영업 시간을 책임질 수는 없으니 말이다. 전소영 배달의민족 홍보팀 주임은 "딜리는 배달의민족이 투자한 베어로보틱스가 개발했다"면서 "베어로보틱스는 인공지능 로봇을 요식업 서비스에 무탈하게 적용하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요식업계의 혁신적 미래를 지향하는 배달의민족의 비전 역시 이와 노선을 같이 한다. 성호경 책임은 "한국피자헛과의 제휴로 딜리 플레이트 시범 운영을 무사히 끝냈다"면서 "결과 분석 및 개선 작업을 통해 향후 서비스 적용 대상 레스토랑의 범위를 넓히는 등 서빙 로봇 상용화 도모를 위해 힘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빙이 끝나고 제자리로 복귀하는 딜리의 모습.
서빙이 끝나고 제자리로 복귀하는 딜리의 모습.
딜리에게서 피자를 받아 테이블로 옮기려는 모습.
딜리에게서 피자를 받아 테이블로 옮기려는 모습.

딜리가 갖는 사회적 의미: "감정노동 스트레스 덜어주기"

지난 2013년 4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노동자 5,667명을 대상으로 한 '감정노동의 직업별 실태' 조사 결과를 내놨다. 그달 30일 발행된 KRIVET 이슈 브리프에 따르면, 선임연구위원 한상근 씨는 감정노동을 많이 수행하는 직업군으로 음식서비스 종사자를 꼽았다. 조사에서 조리사 및 패스트 푸드원, 웨이터와 접객원 등은 "업무로 인해 대인관계와 의사소통 등에 부담감이 크며 꾸준히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진술했다.

감정노동은 본래 타인과의 관계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음식서비스 관련직을 포함한 감정노동 종사자는 상대방이 원하는 언행을 해야 한다. 모든 고객들이 정해진 규범집대로 행동한다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저마다 천차만별이고 더구나 '손님이 곧 왕'인 레스토랑에서 서빙 직원은 고객에 모든 언행을 맞춰야 한다. 지난한 감정노동을 거치면서 후천적으로 '대인관계 불능'이 생긴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인관계 능력과 감정노동의 상관관계가 이해된다.

이런 점에서 서빙로봇 딜리는 요식업계 서비스의 이단아다. 로봇이 육체적인 노동의 많은 부분을 대신함으로써 서빙 직원은 고객 응대의 양을 줄이고 체력도 비축한다. 단순 노동 및 고객 직접 응대의 양이 줄었으니, 질을 늘릴 수 있다. 고객에게 최소한의 서비스를 양질로 제공하는 것이다. 직원으로서는 감정노동에 대한 부담감을 줄여 사람들에게 보다 환한 미소를 보여줄 수 있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음식 서비스를 이용할 기회를 얻는다는 점에서 이득이다.

점차 감정노동직군 종사자의 설 자리가 많아지는 시대다. 일자리의 창출 속도가 빨라진다는 점에서 분명 반길 일이지만, 고된 감정노동을 겪는 사람들 또한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면대면 서비스의 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것이다. 감정노동 수행 일자리의 증가에 발 맞춰 서빙로봇의 상용화가 진행된다면, 꽤 긍정적인 미래를 상상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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