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런 것도 몰라?"

환갑 넘은 엄마에게 스마트폰은 너무 어렵다. 기댈 데라곤 배 아파 낳은 자식뿐인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휴대폰 자판기 누르는 속도가 번개만큼 빠르다. 자식에게 무엇 하나 물어보려 하면 귀찮은지 나중에 가르쳐준다는 말만 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나도 자존심이 있지."

빈정 상한 엄마는 비장한 표정으로 스마트폰과의 나홀로 전쟁을 이어가다, 결국 흰 수건을 내던졌다. 이때 엄마가 느낀 낭패감은 학창시절 좋아하는 남자애가 보는 앞에서 '아이스께끼' 당한 심정만큼이나 초라하고 답답했을 것이다.

친한 벗처럼 자꾸만 찾아오는 질병 때문에 노인들은 무기력하다. 눈과 귀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뼈마디가 쑤셔 온다. 엄마는 며칠 전 휴대폰 대리점에서 이른바 공짜폰을 구입했다. 요즘 휴대폰은 지문 인식으로 잠금설정을 해제할 수 있다. 그러나 갖은 집안일에 엄마의 손이 가닿지 않은 곳은 없었기에, 지문이 닳아 없어진 각 손가락은 뻘쭘하게 제자리를 지켰다.

불친절한 IT공화국 속 은따 당하는 노인들

▶에피소드 #1. 기계랑 대화 못하는 노인은 돈 있어도 못 사먹는다.

최저시급 인상과 4차 산업혁명의 산물인 키오스크는 이미 국내의 많은 패스트푸드 매장에 설치됐다. 아직 기계와 소통하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한 노인들은 매장에 들어왔다가 결제하는 법을 몰라 다시 나가기 일쑤였다. 기자가 직접 목격한 광경의 횟수만 따져도 열 손가락은 넘는다.

롯데리아 인천터미널점의 경우 오전 중에는 키오스크로만 주문 및 결제를 받는다. 주문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점원도 판매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즉 ‘반드시 기계로 주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된다. 오전에는 방문자가 별로 없다는 이유로 매장에 키오스크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인데, 경제적인 조건에서 고려 받지 못한 노인들은 씁쓸함을 감출 수 없겠다.

노인은 4차 산업혁명이 낳은 IT 혁신에 심란하다. 입시와 취업, 각종 사회운동과 주택 대출난 등 온갖 시련을 헤쳐왔음에도 인생 종반에 다시 불지옥(?)과 마주해야 하는 심정은 어떨까? 복잡한 세상 아예 등지고 편히 살다 죽고 싶지만, ‘초연결 네트워크’에 집중하겠다는 IT강국 대한민국에서 그 연결 고리를 끊어낸다는 게 제 무덤 파는 격임은 분명하다.

노인은 왜 밖에서도 눈칫밥 먹어야 하나?

▶에피소드 #2. 스마트폰으로 은행 대기표 발권하는 시대, 노인은 한없이 기다리기만? 

은행 앱 발권도 진화했다. 국민은행 간편 입출금 애플리케이션 ‘리브’는 고객에게 앱을 통한 번호표 발행 서비스도 제공한다. 사용자는 앱을 실행해 가까운 지점 혹은 즐겨찾는 지점 등을 지정해 대기고객 수를 확인하고 온라인 번호표를 발급 받을 수 있다. 직장 등의 업무로 시간을 낼 겨를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환대 받아 마땅한 앱 서비스다. 

가까운은행 카테고리의 번호표발행란을 클릭하면, 고객의 위치에서 가까운 지점 혹은 즐겨찾는 지점이 나온다.
가까운은행 카테고리의 번호표발행란을 클릭하면, 고객의 위치에서 가까운 지점 혹은 즐겨찾는 지점이 나온다.
은행 지점을 클릭해 현재 대기인수를 확인하여 대기 번호표 발급을 받는다.
은행 지점을 클릭해 현재 대기인수를 확인하여 대기 번호표 발급을 받는다.

그러나 국민은행의 온라인 대기 번호표 발권 서비스는 수혜 대상에서 사실상 노인을 배제했다는 점에서 비난의 여지도 충분하다. 은행 주요 고객은 고연령층이다. 요즘 청년 및 중년은 주로 인터넷뱅킹과 모바일페이 송금 방식을 이용하기 때문에 은행에 갈 일이 없다. 우리은행 연수동지점의 로비매니저는 “요즘에는 통장 개설 혹은 펀드 가입, 신권 교환 등의 직접 거래가 필요하지 않은 이상 스마트폰으로 거의 모든 업무가 해결된다”면서 “젊은 사람들의 방문율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전했다. 

은행 안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한 노인
은행 안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한 노인

복잡한 앱을 활용하기보다는 현장 방문이 편한 노인들의 경우 ‘온라인 번호표 발권’의 존재를 알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은행은 단골 고객인 노인에게 소외감을 더하는 앱 서비스를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노인은 일찍이 은행에 와서 자기 차례가 오기까지 한없이 기다리는데, 청년들은 늦게 도착해서 그보다 먼저 은행 업무를 본다. 아이러닉한 광경을 보고 있자니 다소 불공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 은행이 이들의 간극을 심화했다.

▶에피소드 #3. 보안문자 입력은 너무 어려워

보안문자를 입력하는 이유는 사용자 개개인의 보안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매크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우리들은 주로 사이트 회원가입, 재로그인, 본인인증 또는 제품 주문 및 결제 시 보안문자 입력을 요구 받는다. 기자 역시 보안문자 입력 시 영문 대소문자와 숫자 등이 잘 구분되지 않아 새로고침하는 경우가 잦았다.

홈쇼핑앱 간편결제를 즐기는 최영미 씨(여,61세)는 오프라인 매장 가는 횟수를 대폭 줄였다. 그녀는 "나이가 들수록 체력이 약해져 오랫동안 돌아다니는 것이 버겁다"며 "집에서 간편하게 앱으로 결제하고 택배로 물건을 받아보니 편하다"고 말했다. 그녀에게도 고민이 있다. 그녀는 "홈쇼핑앱으로 결제하려면 늘 보안문자를 입력해야 하는데, 돋보기를 껴도 어떤 문자인지 명확한 구분이 서지 않을 때가 많다"면서 "딸이 옆에 있을 때는 항상 대신 적어달라고 한다"고 불편함을 드러냈다. 이어 최영미 씨는 "나이 든 사람들로서는 매번 보안문자 입력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며 "휴대폰 자판기의 문자 사이의 간격도 좁은 편이라 두 개 버튼이 함께 눌릴 때가 많다"고 밝혔다. 

보안문자가 보이지 않아 돋보기 안경 착용 후 휴대폰과 거리를 두고 보는 등 힘겨워 하는 최영미 씨의 모습
보안문자가 보이지 않아 돋보기 안경 착용 후 휴대폰과 거리를 두고 보는 등 힘겨워 하는 최영미 씨의 모습
모 홈쇼핑앱의 결제화면에 나타난 보안문자 입력란
모 홈쇼핑앱의 결제화면에 나타난 보안문자 입력란

IT, 방향 잃은 질주는 폭주...“친절함 겸비해야”

대한민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IT공화국이다. 4차 산업혁명을 향해 너나없이 진군하는 세상 속에서 나이 든 사람들 또한 덩달아 '노인 4.0'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됐다. 그들의 몸과 정신은 과거 정든 파편 덩어리에 묶여 있고 껍데기만 4차 산업혁명의 굴레에 속박된 셈이다. 

국가가 기술 발전의 방향성을 고민해야 할 때다. 방향성 잃은 질주는 폭주에 지나지 않는다. ‘멋지고 빠른 IT’는 이미 충분하다. 이제는 ‘친절한 IT’에 힘써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노인들을 위한 IT 인터페이스가 부족하다. 국가의 발전을 위해 노인을 소외해서는 안 된다. 기술력이 쉬이 닿지 않는 노인까지 포용하는 사회가 완성을 논할 수 있다. 그 변화가 아직 절반밖에 완성되지 않았다. 

작년 말 행정안전부가 제시한 주민등록 노인인구수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작년 기준 735만 6106명으로 전체 연령계층 가운데 14.2%의 비중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0.7% 늘어난 것으로 14% 이상을 고령사회로 규정한 국제연합(UN)의 구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고령사회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보장되지 못한 노후의 삶을 살아가는 노인들 또한 급증하고 있다. 아들딸의 외면과 진보한 세상의 측은한 시선 속에서 꿋꿋이 버텨내기란 쉽지 않다.

물론 멋들어지게 진보하는 세계에서 나홀로 '지체'를 외칠 수만은 없다. 그러나 노인인구가 전체인구의 6분의 1을 차지하는 고령화 사회가 노인을 고려하지 않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설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여섯 조각으로 나뉜 대형 피자에서, 토핑이 다소 부실한 피자 한 조각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파렴치하고 불합리하다.

노인 증가 추세...그들의 사회적응에 대한 고민 더 필요

인천 선학종합사회복지관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이씨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속의 노인 소외문제를 두고 "노인인구가 점점 많아지는 시점에서 어떻게 노인을 사회에 적응토록 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녀는 “복지관에 근무하면서 수많은 어르신이 스마트폰 사용법 문의를 위해 사무실을 찾았다”면서 "가령 알람설정 해제 방법, 카카오톡 글씨를 확대 방법, 앱 설치 방법, 회원가입이나 본인인증 절차 등을 물어보시곤 한다"고 말했다. 이씨가 근무하는 복지관은 지난 5월 열린 지역축제의 한 부스에서 대학 실습생들이 어르신 대상으로 ‘스마트폰 알려주기’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도록 기획한 바 있다. 그녀는 "자식들이 주로 직장에 나가거나 분가하여 살기 때문에 혼자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 노인들이 많다"면서 "스마트폰이나 전자기기 관련하여 궁금한 부분을 바로 해소할 수 없어 답답해 하시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밝혔다. 

이씨에 따르면 지역 복지관은 보통 아파트 단지 내에 있다. 복지의 주요 수혜 대상인 노인 분들의 접근성을 위해서다. 일평균 약 서너 명의 노인 분들이 IT 관련 갈증 해소를 위해 복지관을 찾는다고 한다. 주 연령층은 60대 초반에서 70대 초반이다. 이씨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앱결제, 무인결제기기 등 발전된 형태의 IT인터페이스가 구축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면서도 "지금 노인들은 스마트폰을 접한지 얼마 안 됐다.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노인들을 위한 조치로 친절한 IT 사용자 환경 마련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이어 그녀는 "전체적인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겠지만 다소 늦출 수는 있다. 국가가 큰 물살을 가르지 않으면서 노인 문제 관련하여 시정이 필요한 부분을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대를 막론하고 '노인'이란 본래 외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노인이 될 것이고, 기술력 진보에서 철저히 배제될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노인이다. 끔찍하다고 생각했다면, 그 미래를 바꾸고 싶지는 않은가? 현재 우리나라 IT가 지향하는 방향성을 '멋진 껍데기'에서 '착한 알맹이'로 탈바꿈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기술력 적응 차이가 심리적인 고립 문제로 변질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푸른 하늘 한 번 쳐다보지 못하고 밤하늘로 마감하는 우리들 인생이다. 의미 없는 스마트폰 화면에만 고정하던 고개를 들어, 주변의 어르신에게 다정한 말 한 마디 건넨다면 혼탁한 세상도 윤택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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