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김연수도 없어요” 

[디지털투데이 석대건 기자] 얼마 전, 고은선(28, 가명) 씨는 서울국제도서전에 갔다가 한 전자책 플랫폼 업체의 구독 상품에 가입했다. 평소 전자책이 비싸다고 여기던 고 씨는 만원이면 10권 정도 읽을 수 있다는 계산에 덜컥 신청한 것이다.

처음에는 생각대로 신작도 많았다. 작가 특별전 이벤트도 있어 만족할만했다. 하지만 점점 아쉬움이 커졌다. 정작 자신이 즐겨 읽던 작가들의 책은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고 씨는 “여기에도 시장논리가 있는지 (제게) 매력 없는 책들이 많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최근 전자책 시장이 핫하다. 주목받는 이유는 파괴적인 가격 때문이다. 밀리의 서재, 리디북스 등 전자책 플랫폼 기업들이 저렴한 ‘정기 구독 모델’을 선보이며 구독자를 공략하고 있다. 전자책 정기 구독은 한 달 만원 내외로 전자책 플랫폼 기업에서 제공한 도서리스트 중 약 10권을 골라 자신의 전자책 서재에 담을 수 있다. 읽고 난 후에는 다른 책으로도 교체 가능하다. 

(사진=밀리의서재 트위터)
전자책 월정액 모델로 구독자를 공략하는 밀리의 서재 (사진=밀리의서재 트위터)

이러한 공격적인 움직임의 이유는 최근 ‘장기 대여제’ 금지 여파에서 찾을 수 있다. 최장 50년씩, 거의 영구적으로 대여하는, 도서정가제를 피하기 ‘꼼수’였던 장기 대여제가 막히자,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구독자 공략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전자책 구독 모델은 결국 우리나라 출판 시장의 발전을 막고 독자의 취향을 획일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만약 넷플릭스가 전자책 사업을 한다면?

익명을 요구한 편집자 이 씨는 “이미 출판 시장은 출판사 사재기, 언론 홍보 등으로 변질된 베스트셀러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며, “전자책 구독은 추천 큐레이션이라는 이름으로 변질된 것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개인화 맞춤 플랫폼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유명인 큐레이션이나 베스트셀러에 가깝다는 것이다.

또 넷플릭스가 성공한 이유는 단순한 콘텐츠 큐레이션이 아닌, 오리지널 콘텐츠 때문이라고 전자책 플랫폼의 한계를 꼬집었다. 그는 “많은 전자책 구독 업체가 넷플릭스를 롤모델 삼는데, 그들은 넷플릭스 같은 오리지널 콘텐츠가 없다”고 말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약 45%의 넷플릭스 이용자가 '오리지널 콘텐츠'를 멤버십을 유지하는 이유로 꼽았다. 넷플릭스는 2018년 약 80억 달러(9조 1000억 원)를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투자할 것이라 밝혔다. 또 2019년 1월부터는 코미디 전문 라디오 방송을 시작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이 씨는 “싸고 많은 책의 확산이 좋은 책을 만드는 일인지는 의문이 든다”며, "작가와 독자 사이에 벽 하나가 더 생겨난 셈"이라 덧붙였다.

넷플릭스보다 멜론?

전자책 구독자는 어쩔 수 없이 고 씨의 사례처럼 취향과는 맞지 않지만, 구독을 통해 제공되는 책을 선택하게 된다. 게다가 가격 측면에서 보면 책 한 권의 값이 많은 책을 선택할 수 있는 정기 구독료와 비슷하기 때문에 전자책 플랫폼 기업에서 제공하는 책과 다른 선택은 더욱 어렵다. 

이같은 문화 취향의 획일화는 음악 시장에서 이미 나타났다. 지난 18일, 가수 윤종신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음원 순위인 ‘TOP 100’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지난 18일, 가수 윤종신은 현 음원 차트 문제점을 지적했다. (사진=윤종신 페이스북)
지난 18일, 가수 윤종신은 현 음원 차트 문제점을 지적했다. (사진=윤종신 페이스북)

윤종신은 “차트는 현상의 반영”임에도, “(지금은) 차트가 현상을 만드니 차트에 어떡하던 올리는 게 목표가 된 현실”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이들이 차트에 올라간 곡을 듣다 보니 현상과 차트가 주객전도되어 버린 것이다.

더불어 그는 “많은 사람이 확고한 취향을 가지도록 유도하고 돕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고 취향의 획일화를 만드는 플랫폼에 대해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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