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인턴기자]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저희는 가게 임차료에 각종 부가세, 카드 수수료를 매달 꼬박꼬박 납부하는데, 여기 노점상은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수백만 원을 벌어들이잖아요. 요즘 명동 주류 외국인 관광객은 중국인인데 이들은 길거리 음식을 선호해요. 뿐만 아니라 노점은 세금징수에서 자유로우니 가격 경쟁력에서도 유리하고요. 근 일 년 사이에 저희 상가 음식점과 노점의 매출 차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어요. 지금 노점은 명동 상권을 좌지우지하고 있어요. 왜 법을 성실히 지키는 사람들이 되레 피해를 보아야 하나요.”

명동역 근처 골목골목에 다양한 길거리 음식 노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노점의 바로 뒤편에 위치한 일본 라멘집 사장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그는 세금과 임차료에서 자유로운 노점상이 몸집을 키워가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노점상들의 자리는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으며 장사를 오래한 사람들은 연고권을 주장한다”면서 “입지가 좋은 곳은 1억 원 상당의 권리금을 받고 자리를 내어주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탈세를 권리로 생각하는 그들의 양심 없는 태도와 행동에 진력이 났다”면서 “아르바이트생도 얼마 안 되는 급여에서 칼 같이 세금 떼고 받는데, 노점상은 일반 식당의 한 끼 식사에 해당하는 가격을 받으면서도 현금만 요구한다”고 밝혔다. 한숨을 연거푸 내쉬던 그는 노점상은 더 이상 약자가 아니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명동 노점상 거리, 정말 무법지대인 걸까

노점상 문제는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뜨거운 감자였다. 이미 단단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돼 굳어진 이른바 ‘그들만의 세계’를 무너뜨리기란 쉽지 않겠지만, 탈세와 아이템 도용 논란 등으로 소음이 끊이지 않는 ‘불법 노점 판’을 관용으로 덮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 대안으로서 실명제가 시행됐었으나 실효를 기대하기 어려운 고육책일 뿐이었다. 노점상의 사정을 오랫동안 지켜본 한 관계자에 따르면, 실명제 등록한 본인이 운영하는 것이 아닌, 아르바이트라는 명목으로 명의를 넘겨받은 실제 운영자가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말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는 ‘중구 명동의 실제 지역 실세로 불리는 노점상들의 갑질을 막아 달라’는 제목의 긴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개인이나 특정 조직이 여러 노점을 거느리는 ‘기업형 노점상’의 폭주를 저지해 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에 따르면 노점상 간에 임대‧임차는 비일비재한데 억 단위의 권리금이나 수십만 원의 임대료 등이 모두 구두로만 약속된다는 점에서 형사적 처벌이 쉽지 않다. 그는 “간혹 청년이 나와 노점 장사하는 모습을 보며 청년 창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 쉽지만, 사실상 다른 사람에게 돈 받고 명의를 내주거나 자녀가 명당자리를 직접 대물림 받아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명동 노점상들과 일면식이 없는 외부인은 절대 창업이 불가할 것”이라 단언했다.

국내외 관광객들로 가득찬 평일 저녁 명동역 노점상 거리의 모습
국내외 관광객들로 가득찬 평일 저녁 명동역 노점상 거리의 모습

‘카카오송금’으로 더 활발해진 현금거래… 노점상들의 세금 포탈 부추기나

요즘은 최저 시급 가격이 곧 노점상에서 판매하는 한 끼 가격이다. 일반 식당에 비해 다소 싼 가격에 즐길 수 있었던 길거리 음식의 매력이 언젠가부터 흐지부지 모습을 감춰버렸다. 제법 높은 가격이지만 소비자가 카드결제가 가능하냐고 묻기라도 하면 빈축이 담긴 시선만 돌아온다. 노점은 아무리 많이 벌어도 소득신고를 하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소득신고를 할 수는 있지만, 강제하지 않는다. 합법적으로 임차료와 각종 세금을 내고 장사하는 작은 가게들과 견주어 볼 때, 불공평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머지않아 노점상 세금포탈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명동을 비롯해 길거리 음식점 거리가 형성된 다양한 지역에서, ‘계좌이체 가능’의 간판이 붙은 노점이 늘어나고 있다. 작년에 토스, 카카오페이, 페이코, 네이버페이 등의 간편 송금 기능이 생긴 이래로 우리의 삶이 변화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내놓은 전자지급 서비스 이용 현황을 보면 1년 새 간편 결제, 송금 서비스 이용 규모가 3배가량 증가했다. 노점상에서도 변화가 보인다. 아직까지는 순수 현금 거래가 압도적이지만 핸드폰 번호나 계좌번호를 적어 노점 가판대에 붙여 놓은 곳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는 점에서 현 문제 인식의 필요성은 충분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배고플 때 현금이 없어도 간편한 길거리 음식을 사먹을 수 있으니 좋고, 노점상 입장에서는 현금이 없는 소비자까지도 고객으로 삼을 수 있는 셈이니 이득이다.

요즘 청년들이 간편 결제 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능은 카카오페이 송금이다. 비밀번호 여섯 자리만 입력하면 여타 공인인증서나 보안카드 번호 입력 등의 절차 없이 바로 결제가 된다. 즉 카카오페이 송금을 이용하면 5초 만에 돈을 주고받을 수 있다. 또 상대방의 핸드폰 번호나 계좌번호만 알면 친구가 아니더라도 돈을 보낼 수 있다. 최근 많은 노점상에서 카카오송금 기능을 통해 돈을 받고 있다. 카카오 송금은 수수료가 없다. 또 1회 송금 한도는 50만원이며 1일 최대 100만 원까지 송금 가능하다. 그러나 수신금액 한도는 따로 없기 때문에 노점상이 각 개인에게서 개별적으로 송금 받을 수 있는 돈은 무제한적이다.

거래가 발생하는 곳에는 반드시 과세가 적용돼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점상은 설사 도로 점용료를 낸다 하더라도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합법화된 가로가판대를 제외한 비허가 노점상을 불법 프레임 안에서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점점 많은 노점상이 카카오페이 등을 통한 계좌이체 송금을 결제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런 식의 간편 결제가 또 다른 불법을 낳는다는 점이다. 이미 불법 프레임 안에 있는 노점상이 카카오페이로 수금하는 비율을 늘릴 경우 불법의 연장선을 긋는 것과 마찬가지다. 카카오톡 송금을 통한 거래는 사실상 거래내역이 남지 않기 때문에 현금결제와 더 비슷하고, 자영업자가 일일이 계좌이체를 통해 수금한 내역을 확인하여 자진 신고할 리도 만무하다. 카카오 페이는 ‘신용카드’처럼 편리하면서도 ‘현금’처럼 세금이 잡히지는 않으니 탈세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카카오페이 송금 등 계좌이체 방식을 인정하면서, 노점상의 순수익은 늘어났다. 거래량은 분명 증가하는데 세금은 전혀 부과되지 않는 아이러닉한 상황이 연출된다. 전국적으로 노점상에 카카오송금이 쓰인다면 국가 입장에서는 그만큼 세금 회수를 못하는 셈이 되어 버린다. 물론 우리는 ‘국가가 노점상에게서 세금을 회수할 수 있었는데 못 했다’는 점보다 ‘거래는 더 많이 하는데 세금은 계속 안 낸다’에 주목해야 한다. 

혜화역의 한 노점상에 붙은 문구, "계좌이체 됩니다"
혜화역의 한 노점상에 붙은 문구, "계좌이체 됩니다"

‘카카오송금 결제’ 과도기 겪는 노점상… 계좌이체 시대 적극 환영  

명동역 노점 거리에서 스테이크를 판매하는 상인은 계좌이체로도 음식 값을 받는다. 그는 “명동 노점은 외국인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하는데 그들이 계좌이체 방식을 어려워한다. 그래서 아직까지 이 근방에서 계좌이체를 받는 상인은 많이 없다”면서도 “아르바이트생을 두지 않는 점포의 경우 대부분이 계좌이체 결제방식을 수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계좌이체 방식 도입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는 “적극 환영 한다”면서 “보다 많은 소비자들이 길거리 음식도 카카오송금으로 결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는데 아직 고객들이 이 사실을 잘 모른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현재는 100접시를 팔면 개중에서 5접시 정도만 카카오 송금으로 거래가 되고 있다”면서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계좌이체 결제율이 현금 결제율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찬가지로 ‘길거리음식 문화의 거리’로 지정됐지만 명동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권이 덜 발달한 혜화역은 어떨까. 혜화역 2번 출구 근처에서 와플을 판매하는 한 노점상은 자신의 가판대에 ‘계좌이체 가능’이라고 크게 써 붙였다. 그는 “카카오송금을 통해 결제하는 사람들은 주로 학생이나 젊은 직장인이다”면서 “대략 전체 판매 수 가운데 약 15%가 카카오송금 거래를 이용한 판매다”고 밝혔다. 그는 “예전에는 사람들도 수수료 때문에 계좌이체를 잘 안 했는데, 카카오송금은 수수료도 없고 절차도 아주 단순해서 사람들이 잘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인 입장에서는 이런 간편결제 방식이 나와서 고맙다. 매출에 꽤 큰 보탬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혜화역 모든 노점을 통틀어 가장 먼저 계좌이체를 받기 시작했다던 분식 노점상 역시 계좌이체 방식을 반겼다. “요즘은 시대가 좋아져서 상대방이 카카오페이로 송금을 하면 내 핸드폰에 바로 알림이 뜬다”며 “우리 같이 영업 허가를 받지 않은 노점상은 카드 단말기 지급이 안 되기 때문에 카드를 받을 수 없었는데, 이렇게 계좌이체를 받는 방법이 생겨서 정말 좋고 편하다”고 밝혔다. 

카카오페이 통한 거래, 더 큰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 있어…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위원장에 따르면, 비공식 및 비허가 노점상들은 세금 문제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국내 조례를 보면 노점상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예외조항이 있다. 지방세법 시행령 79조에 따르면 납세의무자 제외대상으로 노점상 등이 명시되어 있다. 소득세법 시행령과 도로가치세법 시행령에 따라서도 면제 대상으로 정해져 있다. 그는 "국내 노점상 자체가 부분적으로 합법화돼 있으므로, 비허가 노점과 허가 노점을 양 극단으로 구분하는 일이 어렵다"고 밝혔다. 

명동에 위치한 중부세무서 또한 노점상 이슈를 두고 '다소 개운치 않더라도 결국에는 묵과할 수 밖에 없는 문제'라는 입장이다. 세무서에 따르면, 본래 사업을 하면 사업자등록을 해서 세금을 내는 것이 마땅하지만 노점상 자체가 사업장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사업을 하면 안 된다. 세무서 관계자는 "사업자등록을 한다고 하더라도 세금을 꼬박꼬박 내면 그들이 챙기는 실익은 없다. 지속적으로 세금을 낼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 노점을 운영하기 마련인데, 그들을 사업자로 등록한들 무슨 소용있겠나. 그래서 구청이 임시로 허가를 내줘 장사를 하게 하고 가끔 단속을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결국 국가 입장에서 가장 좋은 방안은 노점상이라는 자리 자체를 없애는 추세로 가는 것"이라며 "사업자는 세금을 정식으로 내야 한다. 물론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겠지만, 정식으로 임대료를 내는 점포들과의 형평성 및 도시 미관을 고려할 때 노점상은 지양돼 마땅하다"고 설명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노점상=경제적 약자'라는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싶다. 물론 본래 노점상이란 건물에 임차료를 지불할 수 없고 생계를 잇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나와 장사를 시작한 것에서 비롯됐다. 이렇듯 '생계형 약자'로 발돋움한 노점상이 점점 문화를 형성하면서 일부 유리한 상권에 위치한 노점상은 몸집을 비대하게 늘렸다. 같은 노점상 간에도 비대칭이 존재하고 이들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수시로 오간다. 그리하여 노점상이 갖게 된 '모호함'이라는 메리트를 장사에 역이용하는 사례가 곳곳에서 도출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카카오송금을 통한 결제방식이다. 

최근 서울시는 노점상을 합법화 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1일, 서울시는 노점상에 대한 허가를 내주는 대신 일정 점용료를 받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친 후 내년 1월부터 본격 시행키로 했다. 작년 10월 집계된 바에 따르면 서울 시내 노점은 총 7307개이고 대부분 불법 영업 중이다. 내년부터 시행될 서울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노점상은 1년 마다 도로점용허가를 받는다. 또 토지가격의 0.7%를 도로점용료로 낸다. 허가 받는 사람만 노점상을 운영할 수 있으나 질병 등 예외적인 사유가 있을 시 최대 두 달간 가족이 대신 운영할 수 있다. 

기자의 현장 취재 결과, 노점상의 음식 냄새 솔솔 풍기는 정겨운 풍경 뒤에는 불균형과 무법이 난립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책 당국이 나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문제를 파악하고, 새로운 결제방식에 발 맞춘 '최소한의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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