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하자”

[디지털투데이 석대건 기자] 어디서든 시비가 붙기만 하면 너 나 할 것 없이 먼저 꺼내는 말이다. 이때 법은 자신이 사회 상식과 다르지 않다는 주장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된다. 하지만 만약 법이 사회를 반영하지 못한다면, 법은 법으로서의 효용가치를 잃고 퇴색하게 된다. 

헌법 또한 마찬가지다. 헌법은 국민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권을 규정한다는 점에서 중요성은 막대하다.

그렇다면 지금의 헌법이 인터넷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70주년 제헌절을 맞아 ‘정보’, ‘통신’, ‘기술’이라는 세 키워드로 헌법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살펴본다.

인터넷이 없는 헌법

1987년 제정된 현행 헌법에서 ‘통신’, ‘기술’ 그리고 ‘정보’를 언급한 조문은 총 4곳이다.

제18조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
제21조 ③통신ㆍ방송의 시설기준과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18조 통신의 자유는 인터넷 통신만이 아닌 서신 등의 모든 교류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것으로 사실상 기본권에 가깝다. 제21조 또한 언론· 출판의 자유와 관련된 부분이라 인터넷상의 정보통신 개념과 거리가 멀다. 

게다가 ‘함께하는시민행동’의 『 헌법 다시 보기:87년 헌법 무엇이 문제인가 』에 따르면, 위 조항은 1980년 제5공화국 헌법 당시 언론사·출판사의 무분별한 난립을 막는다는 목적으로 도입된 것으로, 오히려 언론·출판 자유를 위축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어 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22조 ②저작자ㆍ발명가ㆍ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

기술 또한 기술 자체에 대한 접근보다는 과학기술자의 권리 자체를 보장하는 측면이 강하다. 

제127조 ①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

결국, 헌법에서 인터넷 시대를 조금이나마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과학기술’과 ‘정보’의 개발을 명령한 제21조뿐이다. 이 조항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체신부를 모체로 하여 1994년 정보통신부가 신설된 후 지금에 이르렀다.

현행 헌법에서 인터넷 시대를 담을 수 있는 조항은 사실상 전무하다고 해도 무방한 셈이다. 

정보는 곧 사람 그 자체

지난 3월, 청와대는 새로운 헌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개헌발의권에 따른 대통령 권한 행사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발의의 이유로 촛불 민심 구현이라 설명했다.

새로운 헌법 개정안은 1987년 제정 헌법과 비교하여 국민의 생명권과 안전권 등이 신설되어 기본권이 대폭 강화되었으며, 기본권 주체가 ‘국민’에서 ‘사람’으로 바뀌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헌법은 국민의 삶을 담는 그릇”이라며, “헌법이 국민의 뜻에 맞게 하루빨리 개정되어 국민의 품에 안길 수 있도록 정치권의 대승적 결단을 촉구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보, 통신, 기술의 세 키워드와 관련하여, 헌법 개정안에서는 무엇보다 신설된 ‘정보기본권’이 눈에 띈다.

정보기본권은 정보공개청구권과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정보프라이버시권, 정보 보안권 등으로 헌법 개정안 제22조에 명문화되었다.

제22조 ① 모든 국민은 알권리를 가진다.
② 모든 사람은 자신에 관한 정보를 보호받고 그 처리에 관하여 통제할 권리를 가진다.
③ 국가는 정보의 독점과 격차로 인한 폐해를 예방하고 시정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청와대는 정보기본권의 신설 이유에 대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통신의 자유나 언론·출판의 자유와 같은 소극적 권리만으로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충분히 대처하기 어렵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알 권리 및 자기정보통제권을 명시하고, 정보의 독점과 격차로 인한 폐해의 예방·시정에 관한 국가의 노력 의무를 명문화했다”고 밝혔다.

(사진=청와대)
지난 3월, 조국 민정수석이 헌법개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인터넷 시대 이후 도래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있어 빅데이터라는 이름의 개인의 정보는 무엇보다 중요한 이슈다. 이런 점에서 정보기본권 관련 조항은 점진적인 조항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스마트시티에 있어서 정보에 대한 법적 근거는 필수적이다. 일례로 세종 5-1 생활권에 조성되는 스마트시티의 경우, 거주 시민에게 편의를 제공하려면 도시 곳곳에서 개인의 거주 및 건강 정보를 활용해야만 한다. 이는 사생활 침해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스마트시티 입주민의 데이터 활용 동의를 받을 예정이다. 데이터 제공하는 시민에게 보상 시스템도 마련 중이다. 

또한 네이버, 페이스북 등 IT기업의 개인정보 독점 및 남용에 대한 방지책을 헌법적 근거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기술과 통신 관련 부분은 여전히 87년 헌법과 동일한 조항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기술과 통신이 정보를 활용하는 도구이라는 점에서 보완점이 드러난다.

지난 1월 대법원의 선고한 네이트·싸이월드 회원들의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사건의 판결 내용을 살펴보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해킹 등 침해사고 당시 사회통념상 합리적으로 기대 가능한 정도의 보호조치를 다하였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적고 있다. 

정보 사업자가 합리적인 보호조치를 했다면 정보가 유출되었다 하더라도 면책된다는 뜻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상상하지 못할 정도 빠르게 기술 발전이 이뤄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있어, 그 보호조치의 합리성 판단 시점은 늦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발전된 기술 아래 정보 유출은 기정사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정보기본권과 더불어 예상할 수 없는 기본권의 침해 수단에 대한 최소한 선 또한 역시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헌법이 한 시대의 모습이라면

물론 앞으로 개선될 여지는 있다. 현재 새로운 헌법 개정안은 보류된 상태다. 지난 4월, 국회에서 국민투표법 개정이 무산됨에 따라 헌법 개정안 국민투표를 지방선거와 동시실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향후 개헌 계획에 대해 “헌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남북정상회담 후 심사숙고해 결정하도록 하겠다”며, “각 부처별로 개헌안의 취지를 반영한 제도와 정책을 지속적으로 마련하고 추진해달라”고 당부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적어도 1987년에 스마트폰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상징되는 인터넷은 우리 삶의 대부분이다. 만약 헌법이 한 시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의 하나라면, 정보, 통신, 그리고 기술로 구성되는 인터넷 요소의 헌법 반영은 필수불가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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