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저희가 일 하고 있습니다.”

[디지털투데이 석대건 기자] 강인호 네이버 자연어처리 리더는 조심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네이버 테크포럼에서 AI 스마트 스피커에 적용되는 음성 처리 기술의 어려움을 설명하는 중이었다. 그저 묻고 답하는 AI 스피커의 단순한 메커니즘 안에 복잡성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AI 스피커의 성공과도 이어진다. 다시 말해, 기업의 서비스 수준은 개발자의 능력인 셈이다. 

개발자를 품은 기업

지난 6월, 마이크로소프트는 세계적인 개발자 사이트 깃허브를 인수했다. 인수가격은 75억 달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8조 3,925억 원에 달한다. 엔씨소프트의 시가총액이 약 8조원임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금액이다. 

깃허브는 약 180만 명이 사용하는 오픈소스 플랫폼으로, 전 세계 기업과 조직을 관리하는 개발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2007년부터 수많은 개발자가 깃허브를 통해 자신이 만든 코드를 공개하고 다른 개발자가 올린 코드를 연구했다. 다시 수정 및 재배포하기도 했다. 

MS는 깃허브 인수를 통해 최근 성장의 기반이 된 클라우드 사업에 디딤돌로 삼는 한편, 개발 중인 AI 관련 제품에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AWS 클라우드와 AI 스피커 알렉사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아마존이 이번 MS의 깃허브 인수에 대해 가장 긴장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제프 베조스가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날의 디지털 1면 (사진=digiday)
제프 베조스가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날의 디지털 1면 (사진=digiday)

사실 이러한 개발자 중심의 기업 운영은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가 대표적이다. 2013년 제프 베조스는 개인 자산 2억 5000만 달러(2,800억원)을 들려 경영난에 허덕이던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했다. 전자상거래 기업CEO가 종이신문사를 개인 자금으로 인수한다는 사실도 의아했지만, 종이신문이라는 쇠락할 것이 분명한 산업에 왜 발을 넣는지 수많은 의문점을 남겼다. 

제프 베조스는 인수하자마자 개발자부터 늘렸다. 인수 2년 만에 50명을 늘렸다. 게다가 기술개발센터와 웹·디지털 디자인과 소프트웨어 개발 센터를 추가로 설립했다. 모두 개발자가 일하는 센터였다. 워싱턴포스트의 샤일레시 프라카시 최고정보책임자(CIO)는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기술이야말로 우리 사업의 핵심"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개발자들은 독자가 기자가 쓴 기사를 좀 더 빠르고,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기사·동영상·데이터 등을 처리하는 디지털 제작 시스템(Content Management System)도 자체 기술로 개발했다.

그 결과는 구독자로 나타났다. 2017년을 기점으로 워싱턴포스트는 100만 명이 넘는 디지털 구독자를 확보했다. 베조스의 인수 초기에 비해 3배가 넘는 수치였다. 

마틴 배런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은 글로벌 에디터스 네트워크 서밋에서 “개발자는 뉴스룸의 핵심인재”이며, “조직의 성장을 이끄는 창조적인 역할을 담당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지금은 개발자 시대

우리나라도 개발자 중심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채용 공고마다 개발자를 찾고 있다. 

지난달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는 출범 후 첫 대규모 경력직 공채를 진행했다. 채용인원은 약 100명으로, 고용 절벽 시대에 주목할만한 신호였다. 그 신호는 개발자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카카오뱅크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이 개발 분야 채용”이라고 밝혔다. 

음식 주문 서비스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2018년 약 200명의 개발자를 채용할 예정이다. 2017년을 기준으로 우아한형제들에서 근무하는 개발자는 약 150명으로 전체 인력의 약 30%였다.

개발자 기업을 아예 인수하기도 한다. 

삼성전자는 AI 사업 강화를 위해 실리콘밸리의 인공지능 플랫폼 개발 기업인 ‘비브 랩스’와 ‘플런티’를 인수한 바 있다. 비브 랩스는 애플의 시리(Siri)를 만든 핵심 개발자들이 만든 벤처기업이며, 플런티는 자연어이해, 대화형 AI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다. 모두 개발자 회사다. 

매년 애플은 세계개발자회의(WWDC)를 개최하고 있다. (사진=애플)
매년 애플은 세계개발자회의(WWDC)를 개최하고 있다. (사진=애플)

그러나 개발자 기업이 인수만 되는 것은 아니다. 합병을 통해 개발자 강점을 살리기도 한다. 

지난해 3월, IT솔루션 기업 UFO팩토리는 디자인 기업 슬로워크와 합병했다. 당시 권오현 UFO팩토리 대표는 “양사의 핵심 경쟁력을 통합해 사회적경제 및 비영리 고객의 성장을 도울 강력한 추진력을 확보하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슬로워크 관계자는 “그동안 디지털 플랫폼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던 제3섹터였다”며, “디자인-개발 전문 기업의 합병을 통해 함께 솔루션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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