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김태림, 석대건 기자] 대법원이 가상화폐(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을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재산으로 보고 몰수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국내에서 범죄수익인 비트코인의 몰수를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3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에서 가상화폐를 사실상 가상자산으로 인정한 후 한국은 갈라파고스(세계시장에서의 고립)가 될 위기에 처했다는 시각이 우세했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로 결국 세계적 흐름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30일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제작‧배포 등) 등 혐의로 기소된 안모(34)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6개월과 함께 범죄수익으로 얻은 191 비트코인을 몰수와 6억9587만원의 추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검찰은 안씨의 구속 시점인 지난해 4월 17일 기준 5억여원에 달하는 216 비트코인에 대해 안씨가 회원들로부터 사이트 이용료 등으로 받은 것으로 보고 몰수를 구형했다. 몰수는 범죄행위와 관련한 물품과 금액을 국고에 귀속시키는 조치다.

1심은 “비트코인은 현금과는 달리 물리적 실체 없이 전자화한 파일 형태로 돼 있어 몰수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며 검찰의 몰수 구형을 기각했다.

반면 2심은 “물리적 실체 없이 전자 파일 형태로 돼 있다는 사정만으로 재산적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또 비트코인은 거래소를 통해 거래가 가능하며, 재화와 용역을 구매할 수 있어 수익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다만 검찰이 압수한 216 비트코인 중 범죄수익으로 볼 수 있는 191 비트코인으로만 한정했다. 안씨가 구속된 무렵인 지난해 4월 17일 기준 216 비트코인의 가치는 약 5억원이었지만, 2심 판결이 난 지난 1월에는 약 25억원이었던 것.

대법원도 2심과 같이 몰수가 가능하다고 판단, 비트코인의 재산상 가치를 인정한 항소심 판결에 손을 들어줬다.

외신과 전자신문에 따르면 지난 3월 19일부터 20일까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장 회의에서 각 국은 가상화폐를 사실상 가상자산으로 규정했다. 다만 외부 여론을 의식해 오는 7월까지 각국이 별도 자산 규정안을 만들기로 했다.

G20은 자금세탁과 테러 자금 조달에 대항하기 위해 설립된 재무대책특별위원회(FATA) 기준을 가상자산에 적용, 자산 개념으로 리스크를 감시하고 다국 간 대응책을 공유하겠다는 방침이다.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규정하면 각국은 가상화폐 규정을 제정하고 표준화할 수 있다. G20 회의 이후 캐나다 등 여러 국가에서 가상화폐 진흥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그동안 한국은 투기‧우려 단속에 초점이 맞춰져 갈라파고스가 될 위기에 처했다는 시각이 우세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한국도 세계적 흐름 '가상화폐=자산' 따라갈 것...일상적 거래는 일러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도 결국 세계적 흐름에 따를 수밖에 없다”며 “이번 판결이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또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결과라고 주장했다.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 교수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당연한 결과라는 의견이다. 빈 교수는 “가상화폐가 가진 어떤 실질적인 가치를 인정 받아가는 과정이라 본다”고 말했다. 이어 “판결 후 몰수한 비트코인을 정부가 어떻게 보관할지 지켜봐야 한다”며 “정부에서 몰수한 비트코인을 보관하기 위해 거래소 계좌를 만든다면 큰 이슈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호규 충남대 경영학 교수는 “현재 경제활동은 대부분 온라인 상에서 이뤄지지만, 우리나라는 보고 만질 수 있어야만 재산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며 “시간이 갈수록 거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재산으로 보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기존의 법 제도 안에서 비트코인이 자산으로 바로 적용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제형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활용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에 대법원에서 비트코인을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재산으로 보고 몰수를 결정했다고 해서 비트코인을 개인 간 손해배상, 위자료 등 일상적인 거래관계에 적용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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