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시장 매커니즘에 맡겨졌던 대·중소기업간 거래 관행에 정부가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정사회론’을 필두로 범정부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방안 발표와 연말 동반성장위원회(이하 동반위)의 발족은 올해 기업계의 화두가 대·중소기업의 상생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실제로 지난 2월 동반위는 동반성장 지수와 관련된 평가 방향을 제시하고, ‘초과이익공유제’ 도입을 주장했다. 또한 지난 3월에는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하도급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개정 후속조치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정책들이 현실에 제대로 정착될 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포스코는 지난 4월 27일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953개의 1-4차 협력기업과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 협약식을 가지며 건전한 기업생태계 정착과 공정거래 문화 확산을 다짐했다. 이날 포스코는 동반성장 협약과 함께 1-2차 협력기업까지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 도입을 확대하겠다고 선포했다
(사진 왼쪽부터 2차협력기업대표 이수현 청우피앤티 사장, 정병철 전경련 부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정준양 포스코 회장,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1차협력기업대표 나채홍 동주산업 사장)

‘동반성장 지수’ 평가에 인상 쓰는 시어머니와 눈치보는 며느리

연초 대한상공회의소가 모 경제지와 공동으로 조사해 발표한 ‘2011년 기업 경영전략과 업계 전망’ 설문 결과를 살펴보면, ‘동반성장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답한 대기업은 41.8%였지만 중소기업은 31.4%로 약 10%포인트 적었다.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답한 중소기업(68.6%)은 대기업(58.2%)보다 훨씬 많았다. 대기업은 동반성장을 위해 충분히 노력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아직도 모자란다는 입장이어서, 대·중소기업 간의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동반위는 지난 2월말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국내 56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활동을 평가하는 ‘동반성장지수’의 구체적 평가방법과 평가항목을 발표했다. ‘동반성장 및 공정거래 협약 실적평가’와 ‘중소기업 동반성장 체감도 평가’로 나뉘는 이번 방안은 올해 7~9월 중 1차 평가가, 내년 3월쯤 2차 평가가 이뤄진다. 이에 따라 동반위는 내년 3월쯤 공정위 자료까지 취합해 종합평가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러한 발표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는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우선 평가 결과를 어디까지 공개할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정운찬 위원장은 “우수기업만 발표하자는 대기업들의 의견도 있고, 하위기업까지 공개해 동반성장을 촉진해야 한다는 제도 도입 취지도 있다”고 말해 정확한 범위를 제시하지 않았다. 또한 종합 평가 발표가 내년 3월이어서, 이명박 정부 임기를 감안했을 때 현실적으로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다.

대기업들은 동반성장정책이 시장 질서를 무시한 채 포퓰리즘에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동반성장지수를 완전 공개할 경우 기업 줄 세우기는 물론 하위권에 포함된 기업은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불만도 함께 제시했다.

중소기업들은 ‘중소기업 동반성장 체감도 평가’를 통해 대기업의 보복이 있을 수도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대기업에 골판지를 납품하고 있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체감도 평가를 한다고 하지만 납품 계약에 전전긍긍하는 중소기업 입장에서 쉽사리 평가에 동참할 수 있겠느냐”며 “대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중소기업을 추적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없애지 않으면 유명무실한 정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호민관을 맡았던 이민화 KAIST 초빙교수는 “현 동반성장지수에서 보복금지를 포함해 동반성장 추진체계 비중이 100점 만점 중 4점에 불과하다. 보복금지야말로 동반성장 정책의 핵심인데 이 부분이 상당히 낮게 다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휴대폰 케이스를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 사장은 “이름만 ‘동반성장’이 아니었을 뿐 예전부터 정부가 이러한 노력은 계속해왔지만 실효성이 거의 없었다”며, “무엇보다 기업별로 지수를 발표하고 잘한 기업에게는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돼 있는데, 포커스가 대기업에만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류동길 숭실대 경제학 명예교수는 “도입하는 제도가 현실과 거리가 멀거나 불리한 경우 제도에 순응하기보다 피해가는 방법을 생각하는 게 기업의 행태”라며, “이익공유제가 시행된다면 상당수 대기업은 부품업체를 직접 꾸려 수직계열화하거나 해외조달 방법을 강구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중소기업이 설 땅을 좁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목표치를 뛰어 넘는 이익 앞에 웃고, 울고

지난 3월초 정운찬 위원장은 ‘동반성장지수’에 이어 ‘초과이익공유제’ 도입을 주장했다. 비록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발언과 최중경 지식경제부장관의 반대 등 여러 고비를 맞게 됐지만, 소신을 굽히지 않고 최근에는 ‘이익공유제’로 말을 바꾸어 그 내용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실 국내에는 지난 2004년 포스코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84개 기업이 ‘성과공유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성과공유제’는 부품·공정개선 등 대·중소기업 간 협력활동 성과를 상호 분배하는 제도다. 해외에서도 1959년 도요타가 처음 도입한 뒤 다임러, 크라이슬러, 델파이 등 미국·유럽 기업들도 도입하고 있다. 동반위의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이 영업이익 목표치를 초과 달성했을 때 협력업체에 이익을 나눠주는 제도로 ‘성과공유제’와는 그 실행방식이 다르다.

대기업은 이미 ‘성과공유제’를 도입한 경우가 많아 ‘초과이익공유제’가 아니라도 동반성장을 위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성과를 배분하는 일은 기업 간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심하게는 상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주의 하의 배급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한다.

최근 삼성은 ‘이익공유제’에 대해 “일단 지켜보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이윤우 부회장은 “나도 동반성장위원회에 몸담고 있는데, 위원회 차원에서 검토하는 것”이라며 “위원회에서 나오는 내용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삼성그룹 관계자는 "협력사를 위해 얼마의 이익을 떼어내야 하는지, 해외 협력사 등에는 어떻게 혜택을 줄 것인지 허점이 많은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대외적인 발표와는 별개로 내부적으론 부정적 시각이 더 많을 것이라 추측되는 대목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김기문 회장은 ‘초과이익공유제’가 발표된 후 말을 아끼다 지난달 15일 보도 자료를 통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공유한다는 기본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소모적 논쟁으로 확대되는 것에 대해 중소기업계는 동반성장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을까 매우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또한, “실제로 납품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저한테 찾아와 (대기업이) 진짜 너무 한다고 하소연 합니다. 그런데 그런 얘길 회의에 나가서 하라면 (불이익을 당할까 봐) 다 도망가죠. 여전히 얼굴없는 항의를 하고 있는 겁니다"라고 말해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지난해에 상생 이슈가 터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듯, 중소기업 대다수가 대기업과 거래 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에서 대외적으로 불만을 얘기하기 어려운 것이 중소기업의 현실”이라며 “불필요한 논쟁을 이어가기보다 구체적인 도입 계획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대기업 앞에 당당해지는 중소기업, 수직 아닌 수평 관계 가능한 일인가

지난 3월 11일 김성식 의원이 공동발의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과 관련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골자로 하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하도급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최근 공정위는 원자재 가격의 급격한 변동으로 인해 수급사업자의 하도급대금 조정이 불가피한 경우 중소기업협동조합이 하도급대금의 조정을 신청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내용을 입법 예고했다. 하지만 대·중소기업의 간극이 실제로 좁혀지지 않고 있으며, 자칫 중소기업만 보호하려다 시장의 경쟁효율이 낮아질 수도 있기 때문에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올해초 ‘하도급법’ 개정안은 여당도 당론을 정하지 못한 채 3개월 동안 방치돼 있었다. 정부안의 핵심은 원자재 값이 15% 이상 오르거나 제품 가격이 계약 당시보다 3% 이상 오를 경우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 조정 신청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여기에 한나라당 서민정책특별위원회가 제출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포함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당시 공정위 관계자는 "원자재값과 납품가격 연동제는 가격 결정에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게 돼 시장경제에 어긋난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문제는 이러한 논란 속에서 중소기업들만 애를 태울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물가 상승 폭이 높아지면서 그에 맞춰 원자재 가격도 급등했지만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납품단가 인상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혹여 납품단가 인상을 요구하면 대기업은 거래처를 변경했기에 중소기업은 공장 가동을 일부 중단하면서 비용을 줄이거나 적자를 보며 납품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난달 11일 ‘하도급법’의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이 조차도 대·중소기업의 반응은 냉랭했다. 여러 경제전문가들은 아직 더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고 지적했으며, 대기업들은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중소기업도 달라질 건 없다는 반응이었다.

이민화 KAIST 초빙교수는 “현장에서 만난 많은 중소기업 대표들은 본질적으로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한다”면서 “오히려 더 심해졌다는 얘기도 적잖다”고 말했다. 한국주물공업협회 관계자는 “과거에는 대기업이 납품업체들의 요청에 아예 눈을 감았다면, 지금은 눈을 반쯤 떴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지적하며, “자동차와 산업기계의 경우 고철값 상승분의 일부만 납품가격에 반영하고, 반영 시기도 실제 인상 시점에서 몇 달 뒤로 미루는 일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나마 푸란수지 인상분이 납품가격에 대부분 반영된 것은 과거와 달라진 모습”이라고 토로했다.

지난해 10월 정부가 동반성장 종합대책을 발표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정책과 현실의 간극이 쉽게 메워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공정거래질서 확립의 두 가지 핵심축인 ‘법·제도 정비’와 ‘관행·인식 전환’ 중에서 전자는 ‘하도급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는 진단이다. 물론 정책이 현실에 안전하게 정착되기 위해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자세도 필요하다.

어렵게 마련된 상생의 틀, 이제부터가 문제

최근 대·중소기업 상생을 목적으로 하는 동반성장 정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동반성장지수’의 평가와 ‘이익공유제’를 둘러싼 동반성장위원회의 움직임, 그리고 ‘하도급법’ 개정안의 현실 안착과 관련한 공정위의 노력은 진행 속도는 다소 느리게 비쳐지지만 한 발씩 나아가고는 있다. 여지껏 많은 논란에 휩싸여 어려운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 듯 처음 취지를 살려 대·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바람직한 생태계를 조성하는게 시급하다는 지적의 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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