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한국오라클에 입사해 10년 이상 마케팅 전문가로 근무해오다 2004년 네트워크어플라이언스코리아의 지사장을 역임해, 올해 1월 EMC로 새로운 보금자리를 옮겼다. 현재 한국EMC의 ECM 사업을 이끌고 있다.

얼마 전 “한국 근로시간 세계 최장이지만 생산성은 미국의 68% 그쳐”라는 타이틀의 기사가 국내 언론을 장식한 적이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노동시장 핵심 지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근로자 1인당 근무시간은 연간 2305시간으로 가장 긴 반면 근로자 1인 연간 생산 부의 가치는 4만 3442달러로, 6만 3885달러로 1위를 기록한 미국과는 68%의 격차를 보였다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미국보다 연간 500시간이나 더 일하면서 생산성은 3분의 2 수준에 불과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조사 결과는 미디어에서 지적했듯이 개인 용무 등 근무시간을 보다 유연하게 사용하는 우리 근로자들의 업무 습성 탓 때문만일까.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미국 등 선진국 근로자들이 적은 시간을 일하고도 그처럼 많은 성과 차이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우수한 IT 시스템 인프라가 한 몫을 했을 것이다. 

특히 IT 기반의 비즈니스 환경이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화되고 방대해지고 있는 비정형의 데이터를 일관되게 수집·정리·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업 컨텐츠 관리(ECM, Enterprise Content Management) 솔루션이 효율적인 업무 수행을 돕는데 지대한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란 판단이다. 지난해 IDC의 조사 보고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생산, 복제, 유통된 디지털 정보의 양은 161엑사바이트(exabyte)로, 기가바이트로 환산하면 무려 1610억 기가바이트 규모였다고 한다. 

또 이중 95% 이상이 비정형 데이터였으며, 한 기업의 비정형 데이터 비중은 80% 수준에 육박한다는 것이었다. 즉 오늘날 근로자들은 정보, 특히 비정형의 데이터 홍수 속에서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개개인의 업무 효율 및 경쟁력을 보장받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장 상황을 반영하듯 최근 ECM 솔루션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IDC는 지난 2004년 350억원 수준에 머물렀던 국내 ECM 시장이 내년까지 매년 9% 내외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또 현장에서 직접 뛰는 업계 관계자들은 이보다 높은 두 자릿수 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 가운데 ECM 시장은 다큐멘텀 인수를 통해 ECM 사업을 발 빠르게 정비한 EMC의 행보에 이어 최근 IBM,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대형 기업들이 뒤늦게 시장에 가세하면서 새로운 경쟁 국면을 맞고 있다. 즉, 데이터·문서·이메일·웹페이지 등 기업의 다양한 컨텐츠를 하나의 시스템에서 통합 관리함으로써 협업과 지식 경영의 근간을 제공할 수 있는 ECM의 핵심 가치가 기업들로 재조명 받고 있는 것이다. 

ECM은 90년대 중반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급속하게 발전한 이후 꾸준하게 성장해 왔다. 지원 영역도 세분화되면서 웹 컨텐츠 관리를 위한 WCM(Web Content Management), 포털사이트 관리를 위한 DCMS(Dynamic Content Management System), 도면 등 생산 관리를 위한 PDM(Product Data Management), 주문 및 신청서 등의 스캔이미지 및 워크플로우 관리를 위한 IMS(Image Management System) 등 다양한 형태의 기술과 솔루션이 출현했다. 

이와 동시에 솔루션을 생산하는 주체에도 많은 변화가 발생했다. 과거에는 개별적으로 또는 각 부서별로 필요한 용도에 맞게 직접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필요한 기능을 추가했다면 전문 패키지를 공급하는 국내 업체들이 속속 출현했다. 

또 대용량의 데이터 처리 및 확장이 용이한 유연한 아키텍처, 업체들간 원활한 정보 공유 요구가 높아지면서 EMC 다큐멘텀을 필두로 외산 패키지들이 다수 도입돼 적용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ECM 발전의 과정에도 아쉬움이 적지 않다. ECM은 직원 개개인의 업무 생산성 향상은 물론 기업 경쟁력 강화를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강력한 툴임에도 국내의 경우 엔지니어링, 제약 등 특화된 산업 부문에서만 그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또 업계 표준 지원 준수를 통해 업체간 협업 시에도 매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음에도 맞춤형의 기능들을 중시하는 국내 기업들 성향 탓에 ECM 본연의 목적을 다하지 못한 채 특정 조직 내에서만 제한적으로 활용하는데 그치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CM 시장이 새로운 경쟁 국면을 맞으면서 업계의 관심이 ECM에 다시 집중되고 있다. 우리 기업들에게는 직원들의 업무 생산성과 경쟁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만큼 우리 기업들은 ECM이 왜 필요한지, ECM 도입을 통해 어떤 이점들을 구가할 수 있는지 등 기본적인 이해를 위해 우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 ECM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ECM 솔루션들의 특장점도 꼼꼼히 살펴 봐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회가 된다면 국내외의 이상적인 ECM 운영사례를 직접 보고 확인하는 것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해외의 성공적인 ECM 운영사례를 살펴 보면 시사점이 참 많다. 해외 기업들의 무슨 일이든 ‘빨리 하고 보자’는 우리 기업들과는 달리 상당한 준비 기간을 갖는다. 이 기간 동안 기업의 요구 사항을 분석하고 사업 범위를 조율하며, ECM 시스템의 최종 품질을 합의하는 등 철저한 준비 작업을 한다. 반면 우리 기업들은 사업 범위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프로젝트 완료 시점이 확정되고 요구사항 분석을 통한 ECM 시스템 구축 작업은 일정에 맞춰 억지로 맞춰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과정에서 납기일이 여러 번 번복돼 서비스 개시일도 수시로 바뀌곤 한다. 

이렇듯 ‘빨리 빨리’로 대변되는 프로젝트 진행 방식은 정확한 목표를 정하기 보다는 시행착오를 통해 반복 작업을 거듭하면서 목표를 정해 도달해 가는 관행을 일상화시키곤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도 근무시간은 최고인데 생산성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또 해외의 성공적인 ECM 고객의 경우 업계 표준과 함께 유연성과 확장성을 중시해 구조화된 아키텍처를 보존함으로써 ECM 고유 기능을 백분 활용하는데 역점을 둔다.
 
반면 우리 기업들은 무리하게 커스터마이징을 강행하면서 복잡해지고 거대화된 시스템 인프라 내에서 결국은 혼돈과 함께 막대한 관리 비용 때문에 상당한 부담을 초래하기도 한다. ECM 시장의 새로운 경쟁 국면에 맞춰 우리 기업들은 처음으로 돌아가 새로운 출발점에 서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출발점은 그간 국내외 ECM 시장이 발전해 오면서 겪어온 시행착오를 근간으로 보다 발전된 자리여야 할 것이다.  

그러한 전제가 약속될 때만이 적은 시간 일하고도 최고의 업무 생산성을 자랑하는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다. 2008년에는 효율적인 컨텐츠 관리를 통해 우리 근로자, 기업들이 최고의 업무 생산성을 기록했다는 조사 결과를 미디어에서 확인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IT TODAY 2007년 11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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