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 한 달도 채 안 남은 ‘스타크래프트2’가 또 다시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을 받았다. 지난 2일,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는 게임물등급위원회에 ‘스타크2’의 수정 버전을 15세이용가로 신청했지만, 심의과정에서 일부 장면의 폭력성 및 선혈 표현의 사실성 등을 이유로 청소년이용불가 등급 판정을 받았다.

이번에 15세 이용등급을 신청하면서 블리자드는 게임위가 청소년이용불가 등급 사유로 밝힌 내용 대부분을 수정하지 않은 채, 희망등급만 상향 조정해 신청함으로써 국내 심의시스템을 무시한 처사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블리자드의 이같은 행태는 이전에 지적받은 바 있어 현재의 등급심의 신청 시스템의 허점을 노려 마구잡이식으로 신청서를 접수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블리자드는 지난해 8월 배틀넷 대전만 가능한 버전으로 심의를 신청해 15세이용가 등급을 받은 이후 이번 신청건을 포함해 ‘스타크2’로만 6차례 심의를 신청했다.

심의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게임위의 심의료는 국고에서 지원받아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같은 게임에 대해 수차례 심의 신청을 반복하는 것은 게임위의 행정력 낭비를 초래한다”며 “재심의 신청 기간에 제한을 두거나 포괄적인 의미에서 3진 아웃제 도입을 검토해봐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끊임없는 이슈 몰이에 나서고 있는 블리자드가 이번 등급신청만큼은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동안 블리자드가 “전세계 고객이 동일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블리자드의 기본 방침”이라며 우회적으로 국내심의시스템을 비판해왔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확인된 바에 따르면 블리자드는 심의신청 사실 자체가 외부로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는 후문이다. 출시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또 다시 등급 문제로 여론의 도마위로 오르는 것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최근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면서 자칫, ‘청불’ 게임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는 위험요소도 무시할 수 없었다는 분석이다.

더구나 블리자드는 최근 한국장학재단에 6억 원을 기부한 것은 물론, 대한항공과 손잡고 공동 마케팅을 진행하는 등 기업 인식 제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스타크2’ 출시를 앞두고 긍정적인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는 블리자드로서는 ‘청불’ 게임이라는 인식을 피하고 싶었다는 분석이다. 

피하고 싶은 ‘청불’ 왜 또 자초?

하지만 블리자드의 이 같은 꼼수는 결국 물거품이 됐다. 블리자드는 기존 버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스타크2’를 15세이용가로 게임위에 등급신청했지만, 심의 결과 또 다시 청불 판정을 받은 것이다. 블리자드가 게임위에 신청한 버전은 이전 청불 버전과 대부분의 게임 내용이 일치하며, 일부 캠페인 모드 도입 동영상에서 선혈이 나타나는 장면을 수정한 것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흡연, 음주 등도 포함돼 있다. 지난 5차례의 심의 과정에서 수차례 게임위가 지적한 내용을 수정하지 않은 버전인 셈이다. 블리자드는 이에 앞서 지난 5월, 게임위가 지적한 내용을 전부 받아들인 버전으로 12세이용가 등급을 받은 바 있다. 블리자드가 국내 심의시스템을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굳이 달라진 점을 설명하면 희망등급이 12세이용가에서 15세이용가로 조정됐다는 것이다.

게임위 관계자는 “블리자드가 이번에 등급을 신청한 버전은 이전 청불 버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위원회에서는 폭력성 및 기타 표현의 사실성 등을 이유로 청불 등급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음주 흡연 장면 그대로

또 다시 청불 판정을 받은 블리자드의 움직임도 보다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달 24일 ‘월드오브워크래프트온라인(WOW)’ 결제 고객에게 ‘스타크2’를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파격적인 가격정책을 보인 블리자드로서는, ‘WOW’ 고객이 ‘스타크2’를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전략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WOW’ 등급이 15세이용가라는 것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최대한 작품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원작에 가까운 버전을 15세이용가 등급을 받음으로써, 12세와 청불이라는 두 개의 상이한 버전의 작품 서비스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게임에 대한 관여도가 높은 청소년을 포섭하기 위해서, 블리자드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최대한 작품의 재미를 살릴 수 있는 버전으로 서비스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다. 블리자드가 15세이용가로 희망등급을 상향조정한 것 역시, 이 같은 노림수가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블리자드가 고객 확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대다수 고객이 원하는 방향으로 작품을 서비스하는 것”이라며 “작품 자체만으로 볼 때 블리자드가 최소한의 수정으로 등급을 최대한 낮게 받으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딜레마에 빠진 게임위

일부 장면만을 수정한 채 끊임없이 등급을 신청하는 것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국내 업체들의 경우 서비스 이전에 등급을 신청하는 횟수는 많아야 3차례 남짓이다. 하지만 블리자드는 이미 6차례에 걸쳐 등급 신청을 했다. ‘스타크2’가 가진 영향력을 볼 때, 게임위가 해당 작품의 등급심의를 위해서는 다른 작품에 비해 고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게임위로서는 ‘스타크2’의 등급신청이 반갑지 않은 이유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외국 업체 봐주기 논란에 휩싸이거나, 과도한 잣대를 들이대며 산업발전의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정된 인원으로 등급심의를 진행하는 게임위 입장에서는 행정력 낭비가 발생하는 것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블리자드가 조금씩 조금씩 수정된 형태로 등급을 신청하며 최대한 유리한 방향으로 등급을 받으려 하고 있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보다 많은 고객에게 작품을 서비스하는 것은 기본 정책이라고 볼 수 있지만, 명백한 등급결정 사유를 무시한 채 일부 장면만을 수정하는 행태는 고객을 앞세워 국내 심의시스템을 무시한 것과 다름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블리자드가 과연 언제까지 등급신청을 계속할 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원하는 등급을 받을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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