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석대건 기자] 얼마 전 네이버에서 뉴스를 읽고 댓글을 작성하려던 트위터 사용자 손 씨는 ‘내 댓글’ 보기를 누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이 작성하지 않은 댓글들이 11개나 있었던 것이다. ‘댓글 알바’라는 용어가 공공연하게 나돌았고, 최근 ‘드루킹 댓글 조작’ 논란까지 있어 더욱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자신의 아이디가 여론 조작에 사용되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손 씨는 네이버를 이용하면서 아이디 해킹 감지 경고를 받지 못했다.

손 씨는 자신의 네이버 아이디가 도용되어 댓글이 작성되었음을 트위터를 통해 알렸다. (출처=트윗 작성자)

십알단과 드루킹

일명 ‘드루킹’이라는 필명의 김모(49) 씨는 지난 1월 말 네이버의 게재된 뉴스 기사의 정부 비판 댓글에 집중적으로 ‘공감’을 클릭하여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김 씨는 반복 자동화 프로그램인 ‘매크로’를 활용했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드루킹의 ‘매크로’ 프로그램에 동원된 아이디는 2,200여 개에 달한다.

댓글을 통한 여론 조작이라는 외형만 본다면, 드루킹 일당의 수법은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활동했던 불법조직인 ‘십알단’과 비슷하다. 하지만 ‘십알단’은 인기 커뮤니티 게시글 및 포털 기사 댓글의 대량 작성, 트위터 내 대량 리트윗을 통해 대세몰이했다는 점에서 네이버 기사 댓글의 공감 수를 집중적으로 조작해 순위를 올린 드루킹의 방식과 차이가 있다. 십알단 방식이 물량에 바탕을 둔 공세라면, 드루킹 일당의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다.

진화하는 여론 조작

문제는 ‘물량 공세’와 ‘선택과 집중’의 융합이다.

‘40인의 조작단’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들은 손 씨의 아이디와 같이 댓글 작성 가능한 해킹 아이디를 각각 10개씩 가진 ‘댓글 팀’ 20명, 한 명당 1,000개의 아이디를 운용하는 ‘매크로 팀’ 20명으로 구성된다. (드루킹 일당은 3명이 2,200개의 아이디를 사용했다.)

이 ‘40인의 조작단’이 조작하려는 대상은 네이버 화면 우측 상단의 ‘가장 많이 본 뉴스’의 댓글이다. 가장 많이 본 뉴스는 정치, 경제 등 5개 섹션에서 하루 최대 1,000개의 기사가 노출된다. 매 시간마다 이전 한 시간 동안 가장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한 각 섹션 10개의 기사가 나열된다.

네이버 뉴스 페이지의 '가장 많이 본 뉴스'(출처=네이버 갈무리)

이제 조작을 시작해보자. 우선 댓글 팀 20명은 특정 기사를 골라 ‘조작 댓글’을 각각 할당된 10개의 해킹 아이디로 3개씩 작성한다. 이후 ‘매크로 팀이 나선다. 20명이 각각 자신이 운용하는 1,000개의 해킹 아이디를 가지고 매크로를 통해 조작된 댓글에 공감을 누른다. 이렇게 하면 ‘조작 댓글’을 순식간에 20,000개의 공감을 받은 댓글로 만들 수 있다.

지금의 시스템이라면 ‘40인의 조작단’의 규모를 확대하여 네이버 ‘가장 많이 본 뉴스’에 게재되는 기사 안의 모든 BEST 댓글을 조작할 수 있다. 또 조작단이 기사 하단의 ‘이 기사를 모바일 메인으로 추천’ 탭을 눌러 모바일로까지 노출된다면 그 영향력은 엄청나게 커진다.

하루 동안 집계는 총 20번 이뤄진다. 다만, 1~6시 랭킹은 01시 조회 기준으로, 6~7시 랭킹은 1~6시에 가장 많이 조회된 기사가 랭킹에 오른다. (자료=네이버)

상위 랭킹에 오른 기사는 조작할만한 기사?

사실 ‘가장 많이 본 뉴스’ 랭킹은 이전 1시간 동안의 집계 결과다. 그렇다면 조작단 입장에선 타이밍을 놓친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포털을 통해 뉴스를 읽는 독자 대부분은 기사가 조회 수 랭킹에 진입해야만 비로소 읽게 된다. 오히려 랭킹에 진입한 기사라야만 댓글을 조작할만한 가치가 생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현재 기사 작성 시각(2018/05/04, 09:24)에 ‘가장 많이 본 뉴스’ 정치 섹션 랭킹 1위 기사의 BEST 댓글들의 순공감 수가 4028, 2146, 1321개임을 감안하면, ‘가장 많이 본 뉴스’ 선정 후에도 조작 가능성은 충분하다. 또 기사 랭킹은 특별한 이슈가 생기지 않는 한 하루 내 큰 변동이 없기 때문에 한 번 조작으로도 지속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조작한다면 개편된 네이버 댓글 정책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네이버도 댓글 정렬 순서 변경 등 여러 방법을 통해 조작 방지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드루킹’ 논란으로 여전히 댓글을 조작하여 여론 공작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이번에도 네이버는 급히 대책을 내놓긴 했다. 하지만 댓글 시간 및 클릭 제한 역시 ‘40인의 조작단’ 앞에 무력하다.

과거 네이버 개편 사항 (자료= 신경민 국회의원 발표 자료집)
2018년 4월 25일 네이버 뉴스 댓글 주요 개편 사항 (자료=네이버)

“차라리 댓글을 더 신뢰하는 편이에요.” 

특히 청소년은 댓글 조작에 취약하다. 경기도교육연구원의 ‘‘가짜뉴스'와 청소년: 청소년은 뉴스를 어떻게 경험하는가’ 연구보고서를 보면, 청소년은 뉴스 댓글을 해당 뉴스와 정보의 신뢰도 및 가치 판단의 주요 기준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한다. 댓글 자체도 뉴스에 포함되는 중요한 정보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부 청소년의 경우, 뉴스에 댓글을 쓰는 사람의 의견과 기자의 의견을 동등한 수준으로까지 인지한다고 답했다.

청소년들은 가짜 뉴스를 판별하는 방법으로도 '댓글 확인'을 꼽았다. (자료=경기교육연구원 보고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해외에서는 어떻게 댓글 관련 문제를 풀어가고 있을까? 5월 2일 국회에서 열린 <포털 인or아웃 ‘포털 댓글과 뉴스편집의 사회적 영향과 개선방안’ >에서의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표자료에 따르면, 구글이나 바이두의 경우 뉴스 서비스 자체가 아웃링크 시스템이기 때문에 댓글 문제 자체가 없으며, 로이터, NPR 등의 해외 뉴스 매체 또한 댓글 서비스를 아예 없애는 경향이라고 밝혔다.

물론 아웃링크로 전환하게 되면, 댓글을 분산할 수 있어 여론 조작은 방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문제점에 대한 지적도 있다. 먼저 포털을 통해 뉴스를 보는 데 익숙해져 있는 우리나라 뉴스 소비자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있다.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제공받던 네이버 전재료(뉴스 정보 제공료)를 받을 수 없으므로 메이저를 제외한 다수의 언론사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전재료는 500억원에 달한다. 거대 포털을 통한 뉴스 공급이라는 우리나라만의 특수 구조가 만든 모순적인 상황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6.13 지방 선거다. 약 40여 일 남았다. 만약 선거 국면에 있어 댓글 조작이 페이크 뉴스와 결합한다면 그 여파의 엄청날 것이다. 보란듯이 해킹 아이디가 쓰이고 있는 지금으로선 댓글 작성란을 아예 막지 않는 한, 기술적으로 댓글 조작을 막을 방법은 없다. 그나마 가능한 최선의 방법은 조작 수단인 아이디를 불법 조직이 활용할 수 없도록 네이버 아이디 해킹을 방지하는 것뿐이다. 요원한 과제 앞에 결국 해결책은 독자를 현혹하지 않는 언론과 뉴스를 소비하는 독자의 냉정한 판단이 중요하다는 원론적인 결론으로 돌아온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가짜 뉴스와 댓글 조작, 언론의 신뢰성 회복, 독자와의 소통 등 수많은 난제가 산적해 있다. 지금 대한민국 뉴스는 루비콘의 강 앞에 서 있는지 모른다. 뉴스의 단순 수용자를 넘어 능동적 시민이 되기 위해 먼저 자신의 아이디가 댓글 조작에 도용되지는 않았는지 확인해보자.

자신이 작성한 댓글은 댓글 작성란 옆의 ‘내 댓글’ 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출처=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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