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홍하나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대표 IT 기업 4사를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업종별 맞춤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혁신을 추구하는 IT 기업 특성상 새로운 기업집단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1일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시행령에 따라 네이버, 카카오, 넥슨, 넷마블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이중 새롭게 추가된 곳은 넷마블로, 국내 대표 IT 기업 네 곳 모두 총수있는 기업으로 지정됐다.
네이버, 카카오, 넥슨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준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넷마블은 지난해 기준 자산 5조원을 넘으며 올해 처음 공시 대상 기업으로 지정됐다. 넷마블의 경우 게임업계에서 두 번째다.
공정위는 자산 총액 10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은 상호출자제하기업집단(대기업집단),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은 공시대상기업집단(준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고 있다. 동일인도 함께 지정하는데, 동일인은 회사나 개인으로 지정될 수 있으며 개인으로 지정될 경우 재벌 총수를 뜻한다.
총수(동일인)는 기업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로, 총수는 회사의 잘못에 대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또 관련 법에 따라 본인과 6촌 이내의 친인척의 기업관련 활동을 공시, 가족이 소유한 자회사에 일감 몰아주기 여부도 조사받을 수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해진 전 의장 겸 글로벌투자책임자(GIO)를 총수로 지정했다. 이 의장의 경우 개인주주로서 최대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실질적인 지배력이 높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해진 GIO는 지난 2월 1천500억원대의 자사주를 매각하면서 지분율을 4.31%에서 3.72%로 줄인 바 있다. 아울러 지난 3월 사내 이사직을 내려놓으면서 일각에서는 공정위의 총수 지정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이어졌다.
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다르다. 네이버도 총수 지정의 변화를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최근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으로 비판받고 있는 상황에서 네이버가 작년처럼 공정위에 총수 지정을 고려해 달라는 요구를 하기가 어려워졌다.
지난해 네이버는 총수있는 기업으로 규정한다면 글로벌 IT시장 진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뿐만 아니라 전문경영인 체제로 투명하게 전환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의 행보에 제동을 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해진 전 의장이 GIO로 활동하고 있는 만큼 네이버가 총수있는 기업으로 지정될 경우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한국 기업의 저평가 현상으로 브랜가치가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네이버 측은 “이 GIO는 회사에 조금씩 힘을 빼면서 후배 경영자들에게 경영권을 투명하게 물려주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이 GIO의 역할은 오직 글로벌 진출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정위는 네이버의 계열사로 편입했던 휴맥스 등에 대한 계열분리를 인정했다. 앞서 네이버는 지난해 변대규 휴맥스홀딩스 회장을 새 의장으로 선임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공정위가 네이버를 준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면서 휴맥스 계열사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공정위는 “올해 4월 17일 시행령 개정으로 임원독립경영 인정제도가 도입, 시행된 후 네이버 측에서 최초로 휴맥스 계열회사에 대한 독립경영을 신청했다. 요건 충족 여부에 대한 심사를 거쳐 계열분리를 인정했다”고 말했다.
카카오·넥슨·넷마블도 총수있는 기업 지정...IT 기업 특성상 새로운 기업집단 만들어져야
카카오는 지난해와 같이 준대기업집단 지정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카카오 측은 “카카오는 법에 규정된 준대기업집단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공정위는 김범수 카카오 의장을 총수로 지정했다. 김 의장과 소유 회사 지분을 합할 경우 30%가 넘기 때문이다.
넥슨도 지난해에 이어 준대기업집단으로 선정, 총수로 김정주 창업자가 지정됐다. 넷마블은 지난해 자산총액이 5조3천477억원으로 늘어나면서 준대기업집단에 지정, 전체 지분 24.4%를 보유하고 있는 방준혁 의장이 총수로 지정됐다.
공정위 측은 공시 집단으로 지정되어도 공시 의무, 사익 편취 규제만 적용받기 때문에 다른 영향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IT 업계에서는 기업 특성을 고려해 공정위가 새로운 기업집단을 만들어줄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인터넷 기업 관계자는 “이제 공시기업집단의 새로운 모델이 나올 때가 됐다. 공정위가 대기업집단을 지정하는 것은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를 막기 위한 것으로, 최근 IT 기업들의 경영체제가 이사회 중심으로 가고 있는 만큼 새로운 모델의 기업집단이 등장할 시기”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