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 16년. 정권 교체 때마다 '강한' 정치적 외압에 흔들리는 민영기업 KT를 보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매번 실망하면서도 매번 기대한다. 새 정권만큼은 KT나 포스코 등 민영화된 구(舊) 공기업의 최고경영자 자리를 논공행상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기를. 문재인 정권에 거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그 기대는 또 흔들린다.

지난 18일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새 정권의 흔들기에 버티지 못하고 자진 사임의사를 밝혔다. 정권이 압력을 행사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없지만 정황 증거는 차고 넘친다.

황창규 KT 회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 17일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20시간의 경찰조사를 받았다. 황 회장은 혐의 대부분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잘못이 있다면 시시비비를 엄중히 묻고 처벌을 받으면 된다.

그러나 세간의 관심사는 시시비비가 아니다. 황회장이 KT 회장 자리에거 물러날 것인가에 관심이 쏠려있다. 역시 정권이 압력을 행사했다는 구체적 증거는 없지만 정황 증거는 넘쳐 흐른다.

정권이 바뀌고 KT와 포스코 등 주인없는 민영화 기업 회장 자리를 노리는 자들의 하마평이 나돌았다. 여당 국회의원부터 정권 창출에 기여한 수많은 이들이 KT 회장 자리를 노렸고, 지금도 노리고 있다.

이 역시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조만간 포스코의 차기 회장에 누가 선임되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것이다. 그리고 KT 역시 과거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수근될 것이다. 적폐다.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정부가 오히려 적폐를 쌓는 꼴이다.

황창규 회장은 삼성 반도체의 신화적 존재로 메모리 반도체 용량이 해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황의 법칙'으로 인정 받은 뛰어난 사업가다. KT에서도 그의 경영능력은 이미 검증된 바 있다.

황창규 KT 회장

KT는 할 일이 많고, 갈 길도 멀다. 당장 5G 기술의 국내 최초 상용화라는 글로벌 이슈에 대응해 마라톤 행진에 돌입한 상황이다. 현 상황에서는 황 회장 만큼의 리더십과 전문성을 갖춘 적임자는 없어 보인다. 특히 하마평에 올랐던 정권의 낙하산 인사는 더욱 거부감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현 정권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동안의 적폐 정치와 사회 부조리를 해소할 것이라 믿는다. 그렇지만 세상을 바꿀 인재들이 '민영화된 공기업'에서 한 자리 차지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몰염치한들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악습에 얽매여 스스로 적폐를 만든다면, 정치적으로도 산업적으로도 진보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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