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백연식 기자] 세계 각국이 5G 상용화를 준비하는 상황에서, 아짓 파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이 MWC(모바일월드콩그레스)2018에서 망중립성 폐지에 대한 입장을 계속 유지했다. 5G 시대를 앞두고 통신사들의 5G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망중립성을 폐지해야 한다는 논리다. 또한 망중립성을 폐지하더라도 인터넷 기업들에게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망중립성을 유지해온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 5G 상용화 준비를 앞두고 정책에 어떤 변화가 오게 될지 관심이 쏠린다.

아짓 파이 위원장은 지난 26일(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2018 ‘산업의 미래:디지털 정책과 규제’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해 망중립성과 5G 이동통신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아짓 파이 위원장은 “망중립성을 폐지하더라도 인터넷은 여전히 열리고 자유로운 곳으로 남을 것”이라며 “내가 강조하는 가벼운 규제는 1990년대부터 2015년까지와 다르지 않다”며 “이 시기 아마존·페이스북 등이 등장해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에서 5G가 성공하기 위해 시장 지향적인 가벼운 규제는 필요하다”며 “5G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스마트한 네트워크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짓 파이 위원장은 많은 사람들과 대다수의 기술 회사들이 망중립성에 대해 우려하고, 긴 소송이 진행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입장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짓 파이 미국 FCC 위원장 (사진=테크크런치)

미국은 망중립성을 왜 폐지했나 

망중립성이란 네트워크사업자(ISP)가 망을 이용하는 콘텐츠나 서비스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말한다. 망중립성이 강화될수록 통신사의 네트워크 지배력이 약해지는 것이고, 망중립성이 폐지될 경우 네트워크에 대한 통신사의 영향력이 커진다.

2015년 오바마 정부는 미국 통신법 706조의 타이틀Ⅰ(정보서비스 사업자)로 분류된 유무선 ISP(인터넷서비스 제공 사업자)를 타이틀 Ⅱ(기간통신사업자, Common Carrier)로 정의했다. 네트워크를 가진 통신사(ISP)를 규제가 강한 기간통신사업자로 규정해 네트워크 제공 등 의무를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트럼프 정부와 아짓 파이 위원장은 다시 타이틀 I 으로 바꾸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즉, 미국 이통사의 편을 들어 5G 인프라 투자를 장려한 것이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우리나라의 통신 인프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뛰어나기 때문에 망중립성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며“ 미국은 통신 속도가 느린 편이기 때문에 앞으로 많은 투자가 필요한데 트럼프 정부가 5G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이통사의 편을 든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 이통사들도 5G 투자 앞두고 망중립성 폐지 원한다 

우리나라 이통사들은 세계 최초 5G 상용화에 앞서 주파수 경매와 5G 인프라 투자가 선행되기 때문에 미국처럼 망중립성 폐지를 원하고 있다. 특히 선택약정할인 25% 상향이나 취약계층 기본료 폐지, 보편 요금제 추진 등으로 매출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이통사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망중립성을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통사 한 관계자는 “5G의 경우 아직 BM(비즈니스 모델)이 개발되지 않았고, 투자가 선행되고 이익이 나중에 발생하기 때문에 이통사의 고민이 크다”며 “ 망중립성이 폐지 또는 온화될 경우 이통사의 인프라 투자가 장려되는 측면이 클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법이나 가이드라인을 통해 망중립성을 지키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예전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2011년 발표한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을 통해 망 보안 · 안정성 확보, 망 혼잡으로부터 다수 이용자 보호, 법에 따른 국가기관 요청을 제외하고는 트래픽 전송을 차별하지 못하고 트래픽을 불합리하게 차별해선 안 된다는 규정을 지키고 있다.

과기정통부 통신경쟁정책과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경우 망중립성 가이드라인과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른 방통위의 사후 규제로 망중립성을 지키고 있다”며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의 경우 법적인 강제성은 없지만 현재 잘 지켜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상황에 대해 예의주시 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망중립성 변화 위해서는 새로운 법안 필요, 현재 여야 의견 강경 대립

우리나라의 망중립성 정책이 변하기 위해서는 방통위의 가이드라인을 대체할 새로운 법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현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경우 망중립성에 대한 여야간 의견이 강경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이 당분간 계속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유승희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망중립법은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을 법제화하는 내용이다. 이동통신사가 자신이 제공하는 의무, 경쟁관리에 있는 콘텐츠 등 트래픽 차단이나 이용 가능한 서비스 양 제한 등 차별을 하지 못하게 하고 콘텐츠 유형, 제공자 등에 따라 합법적인 트래픽을 불합리하게 차별하지 못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반면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준비 중인 포스트 망중립법은 5G 시대에 맞게 예전에 만들어진 망중립성을 폐기하고, 이를 재정립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사업자 간 협력 모델 등을 통해 통신요금 분담을 B2B(기업간)시장으로 확대하자는 내용이 담겨있다.

실제로 유의원과 김의원은 망중립성 법안을 심사한 지난해 11월 망중립성 법안을 논의하다 언쟁을 벌인 적도 있다. 유 의원은 “미국의 망중립성 폐지를 따라가야 한다는 기조는 국회의원 의무를 포기하는 행위”라고 발언했고, 김 의원은 “이통사업자에게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충분한 환경과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으면 IT 강국으로 가는 길이 무너질 수 있다”고 맞섰다.

과방위 위원실 한 관계자는 “현재 과방위 ICT 법안소위 구성이 어려운 상황이고,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4월 임시국회에서도 논의가 되기 어렵다”며 “설사 법안소위가 구성된다고 하다라도 여야간 의견이 대립되는 법안은 단기간에 통과되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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