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정명섭 기자] 문재인 정부의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 관련 중장기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이하 협의회)가 오는 22일 마지막 회의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11월 10일 첫 회의를 가진지 100여일 만이다. 협의회의 목적은 정부-기업-시민단체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통신비 인하에 대한 공정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관련 업계에서는 협의회가 민간기업에 대한 정부의 압박을 강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 않다는 하소연을 한다.

협의회는 통신시장의 대표성을 띈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는 자리로, 출범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민간과 정부 관련 부처들이 참여해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한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일부 현안에 대해선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성과를 거뒀다. 단말기 자급제의 경우, 협의회 참여자 다수가 법안 도입 시 발생할 부작용을 우려, 현재 8%에 불과한 자급제 자체 비중을 높이자는 대안이 제시됐다. 이는 삼성전자 등 제조사에 자급제 단말과 이동통신사로부터 구매하는 단말기 간 가격과 출시시점 등의 차이를 해소해달라는 요구로 이어졌다. 제품 판매 경로가 다양해지면 제조사 입장에서도 손해볼 것은 없다. 삼성전자는 올해 중저가폰 뿐만 아니라 프리미엄 스마트폰도 자급제용 출시하겠다고 밝히면서 자급제 논의는 일단락됐다.

반면 보편요금제 논의는 수 차례 회의에도 불구하고 평행선을 걷고 있다. 보편요금제는 지난해 12월 22일 협의회 5차 회의에서 처음 다루기 시작한 후 오는 22일 마지막 회의까지 총 다섯 차례 안건으로 오를 정도로 쟁점 사안이다.

지난 9일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 8차 회의 현장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편요금제는 월 통신요금 2만원에 음성 200분, 데이터 1GB를 제공하는 요금제로, 현재 이동통신 3사의 3만원대 요금제를 1만원에서 1만5000원 가량 내리는 것이 골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8월 23일 보편요금제 도입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고, 그 해 10월 2일까지 의견수렴을 마쳤다. 그러나 과기정통부는 이동통신사들과 알뜰폰업계가 적극 반대하면서 규제개혁위원회 규제 심사를 목전에 두고 공을 협의회로 넘겼다.

협의회 분위기는 이동통신사에 보편요금제 도입을 강요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동통신사들은 보편요금제를 알뜰폰의 영역으로 두고, 데이터중심 요금제‧로밍요금제 개편 등 자발적 통신비 인하를 대안으로 내세웠다. 통신비를 낮출 수 있는 여러 방안이 있으니 보편요금제를 법률로 강제하지 말자는 주장이다.

반면 정부와 시민단체는 보편요금제 없이는 통신비 인하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보편요금제가 아니면 안 돼”라는 식의 접근은 논의가 아닌 압박이었다. 급기야 보편요금제 도입을 반대하는 이동통신사에 “협의 하는 자리에서 반대만 하지 말라(6차 회의)”고 질타했고, 시민단체는 이동통신사가 전향적 태도를 보이지 않자 협의회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8차 회의). 협의회 출범 당시 내세운 ‘공정성’과 ‘중립성’이라는 가치는 이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보편요금제 도입 시 이동통신 3사의 부담은 과기정통부 추산 연간 최대 2조2000억원이다. 이동통신 3사 지난해 영업이익(3조7386억원)의 58%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불과 4~5차례 회의로 이동통신사에 전향적인 자세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통신비 절감은 국민의 삶의 질 개선과 밀접한 민생 현안으로, 그 취지에는 모두 공감한다. 다만 협의회가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 출범했다면 일방적 강요로 마지막 회의를 할 것이 아니라, 협의회 운영 기간을 늘려 최대한 합의점에 이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이는 정부가 협의회를 통신비 인하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한 길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