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박근모 기자] 정부의 일방적인 가상화폐 규제안이 누가 의도라도 한 것처럼 사방에 빠른 속도로 유포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상화폐 업계나 가상화폐 투자자는 제외됐다. 대신 금융위원회를 시작으로 국세청, 한국은행, 이번엔 법무부까지 각기 다른 규제안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세부 규제안은 부처마다 각기 다르지만, 기본적인 기조는 비슷하다. 가상화폐를 규제 해야 한다는 점에 방점이 찍혀있다.

가상화폐 업계에서는 당혹과 걱정 등 만감이 교차하고 있다. 지난 8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내년 블록체인 연구 개발비로 42억원을 책정하며 본격적인 블록체인 기술 확산에 나선다고 발표 할 때까지만 해도 기대가 컸던 업계는 정부가 전방위적인 가상화폐 규제안을 내밀면서 블록체인으로 대변되는 시대흐름을 역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정부의 일방적인 가상화폐 규제 방침 발표에 대해 가상화폐 업계와 투자자들은 규제 당국과 제대로 된 대화 한번 하지 못한 상황에서 당사자들의 참여 없이 만들어진 규제안은 업계 현실과 글로벌 상황에 대한 몰이해가 낳은 결과라고 강조하고 있다.

시간을 살짝 돌려보자.

지난해 11월 처음 만들어진 금융위 주도의 가상통화(화폐) 관계기관 태스크포스(TF)는 정권 교체 시기와 맞물리면서 첫 회의조차 열리지 못했다. 그로부터 10개월 뒤엔 지난 9월 본격적인 TF가 열렸고, 회의 결과 가상화폐공개(ICO) 전면 금지 조치 방안이 처음 등장했다. 하지만 당시 핵심 내용은 거래투명성 확보와 소비자보호 장치 마련을 위해 가상화폐 취급업자의 자율규제 권고 방침에 힘이 실렸다.

또한 가상화폐 취급업자의 자율규제 권고 방침에 따라 국내 주요 가상화폐 거래소와 블록체인 관련 기업들의 연합체인 '한국블록체인협회'를 대화 상대로 삼고, 대화를 통해 효과적인 방안 마련에 협조하기로 했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최종구 금융위원장 등 규제 당국의 수장들의 발언과 함께 이런 움직임은 돌변했다.

지난달 28일 이낙연 국무총리의 "가상통화 문제를 이대로 놔두면 사회병리현상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라는 발언이 나옴과 동시에 지난달 29일 금융위는 가상화폐 거래소를 '유사수신행위 등 규제법(유사수신행위법)' 개정안을 통해 유사수신업체로 규정할 방침을 발표했다. 여기까지는 지난 9월 발표된 내용과 사실상 큰 차이는 없다. 다만 기존 '의원 입법' 형태에서 '정부 입법'으로 선회했다. 규제 당국이 가상화폐 규제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사 표명을 한 것이다.

지난 4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가상화폐 거래에 관한 공청회'를 통해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가상통화는 화폐나 금융상품의 기본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며, 금융업으로 포섭해 금융회사와 같은 공신력을 보장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이후 국세청은 가상화폐에 대해 과세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한국은행은 가상화폐를 화폐로 보기보다 상품으로 보고 거기에 맞는 규제를 해야한다고 주장했으며, 법무부는 가상화폐 거래 자체를 전면금지 해야 한다는 강력한 규제안을 밀고 있다.

문제는 다양하다. 국세청이 가상화폐에 대해 과세를 하기 위해서는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포함해야 한다. 국세청이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포함한다는 것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가상화폐를 인정한다는 말과 같기 때문에 현 정부의 방침상 불가능하다.

법무부는 가상화폐 거래뿐만 아니라 가상화폐 거래소도 유사수신 범위에 포함시켜 중국과 같이 전면 금지 시켜야 한다고 의견을 내고 있다.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 변호사는 "가상화폐 거래소를 유사수신업자로 규정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라며 "금융위원회나 법무부가 유사수신행위법 개정을 한다고 할지라도 본래의 유사수신 법리에 가상화폐를 포함시키는건 상당한 무리수"라고 설명했다.

또한 금융위의 압력으로 국내 대형은행들이 가상화폐 거래를 위한 가상계좌 발급 중단에 들어갔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국에서는 비트코인 선물상품이 공식 출시됐지만, 국내에서는 이에 대한 투자 준비는 커녕 관련 세미나도 모조리 취소되면서 이제는 가상화폐 업계뿐만 아니라 기존 금융권들도 글로벌 흐름에서 뒤쳐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초기 금융위 주도의 가상화폐 규제안에서 현재는 법무부가 주도 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상화폐 업계와 투자자들과는 대화 창구를 막아두고 소통을 무시한 일방적인 가상화폐 규제 방침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하루에도 몇번씩 비공식적인 규제 당국발 가상화폐 규제안이 발표되면서 일부러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또한 정부가 오히려 가상화폐 시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오는 15일 법무부 주도의 TF 회의가 예정돼 있다. 업계에서는 가상화폐 거래 전면 금지 발표가 나오더라도 실제 거래 금지까지는 이뤄지기 힘들다는 입장이나, 이로 인해 가상화폐 및 블록체인 기술 시장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장은 "규제 당국이 대화는 피하면서 가상화폐 및 거래소에 대한 규제 방침만 흘리고 있는 상황이 너무 답답하다"라며 "현재 당초 이야기대로 오는 15일 자율규제안을 발표할 예정인 만큼 지금이라도 규제당국과 대화를 통해 원활히 해결할 수 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현재 글로벌에서 가상화폐 거래 자체를 전면 금지하는 국가는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정도에 불과하다. 심지어 이들 국가들은 법으로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가이드라인을 통해 규제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법을 만들어 규제한다면, 다시 되돌리기 쉽지 않다는 걸 이들 국가들은 잘 알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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