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정명섭 기자] 통신 이용자의 개인정보 보호와 수사기관의 초동 수사에 대한 공익성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 이 질문의 해답을 찾지 못한 국회는 통신자료 제공 시 법원에서 영장을 받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4일 국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정보통신방송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통신자료에 대한 영장주의 적용’을 골자로 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6건)을 심사했으나, 통과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통신자료에 대한 영장주의 적용이란 이동통신사가 수사기관 등의 요청에 따라 특정 가입자의 통신자료 제공할 때 법원에서 허가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통신자료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계정, 가입일 등이다.

현행법상 이동통신사는 법원이나 검찰, 국가정보원 등에게 가입자 등의 자료 제공을 요청받으면 재량으로 정보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헌법상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통신자료 제공 시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도록 하는 단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커졌다. 특히 정보통신기술(ICT) 기술의 발달로 통신서비스가 국민의 필수재로 자리 잡으면서 이같은 주장은 힘을 받게 됐다.

통신자료 영장주의 적용을 골자로 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발의 현황.

그러나 법무부와 경찰, 국가정보원 등의 수사기관은 반대하고 있다. 수사단계에서 통신자료는 피의자와 피해자 등의 기초적인 신원을 확인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약 영장주의가 적용되면 초동 수사를 지연시켜 장기적으로는 공익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해당 법안을 발의한 의원 간에도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6건 중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승용 국민의당 의원,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은 영장주의 적용을 명시한 반면 최명길 국민의당 의원과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에선 이를 제외했다.

또한 통신 이용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관할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수사기관의 입장을 대변하는 법무부 간의 입장도 다르다. 통신 가입자의 사생활 보호와 수사의 공익성의 충돌로, 영장주의 적용은 이른 시일 내에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창림 과기정통부 통신정책기획과장은 “통신 이용자의 권익 측면에서 통신자료 영장주의 취지에 공감한다”라며 “그러나 검찰 등에서 수사 상 여러 가지 어려움을 호소하는 문제가 있어 국회에서 바람직한 해결방법을 논의해주길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 법안소위에서는 사후 통지 규정을 적용하자는 데는 의견이 모였다. 사후 통지는 이동통신사가 고객의 통신자료를 수사기관 등에 제공할 때 당사자에게 그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이 또한 개인에게 통신자료 정보 제공에 대한 알권리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통신자료 제공 시 수사 대상이 노출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 충돌해왔다.

다만 사후 통보 절차를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도 의견이 나뉘고 있다. 이는 과기정통부와 법무부가 관련 안을 만들어서 다음 법안 소위 때 통과시키기로 결정됐다.

과방위 소속 의원실 한 관계자는 “비밀 유지의 필요성이 떨어진 이후에 내사가 종결된 상태에서 30일 이후에 사후 통보는 필요하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라며 “통신자료 제공할 때 어떤 내용으로 할 것인지 등 세부적인 내용이 법안마다 내용이 달라서 이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사진=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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