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정명섭 기자] ‘방송 장악’이라는 블랙홀이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를 다시 한 번 집어삼켰다. 여야 의원들은 공영방송 정상화를 둘러싸고 설전을 벌였고 국감은 몇 차례 파행을 겪었다. 결국 가계통신비 인하 등 통신 부문 이슈는 운도 떼지 못한 채 국감이 마무리 됐다.

3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종합감사는 이날 오전 원자력안전위원회 국감을 마치고 점심식사 시간이 지난 오후 3시경 시작됐다.

곧바로 국감을 진행해도 시간이 빠듯한 상황. 그러나 국감 시작과 동시에 공영 방송을 둘러싼 여야 의원들의 신경전이 펼쳐지면서 감사에 차질이 빚어졌다.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언행 놓고 여야 고성

가장 먼저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한 자유한국당 과방위 간사 박대출 의원은 “지난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국감에서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이 쉬는 시간에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 다녀온 것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에서 모욕적인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한 사과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7일 방문진 국정감사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국회 보이콧’으로 과방위 더불어민주당간사인 신경민 의원이 신상진 위원장을 대신해 진행됐다. 당시 기관 증인이었던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쉬는 시간을 이용해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 참석했다.

이에 신 의원은 “공영방송 MBC의 대주주인 방문진의 이사장이 특정 정당, 그것도 국감을 보이콧 하고 있는 정당 회의에 다녀오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고, 고 이사장이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양 측의 언성이 높아진 바 있다.

박대출 의원에 이어 발언한 신경민 의원은 “고 이사장을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라며 “공영방송을 이 지경으로 만든 강간범”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자유한국당 측은 이에 즉각 반발하며 신 의원을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대출 의원은 “신경민 의원의 판단 근거는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고, 불만도 있지만 국감은 엄중한 자리”라며 “모욕적인 발언으로 국회 품위를 손상시킨데 대해 윤리위에 정식 제소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김정재,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도 “국회의 갑질이다”, “지나친 언사다”라며 거들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의원 뿐만 아니라 국민의당 의원도 목소리를 내면서 국감장은 아수라장이 됐고, 신상진 과방위원장은 국감이 시작된 지 30분 만에 정회를 선언했다.

31일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기관 증인으로 참석한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정회 또 정회...방송 장악 논쟁, 색깔론으로 번져

1차 정회 후에도 공영 방송 이슈는 국감장을 맴돌았다.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효성 방통위원장에게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했고, 지금의 MBC만 제대로 된 언론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며 “이효성 위원장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물었다.

이효성 위원장은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한국과 같은 상황에서 특정인을 공산주의자로 몰고가는 것은 부적절하다”라며 “대통령을 꼽은 국민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답변했다.

자유한국당 측도 반격에 나섰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은 “KBS 1TV에서 방영된 ‘김정은의 두 얼굴’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북한 김정은을 재치있고 틀을 깨며 자기주도적인 혁명가라고 소개하고 있다”라며 “예측 불가한 30대이며, 대한민국 국민이 핵인질이 됐는데 KBS가 이런 방송을 하는게 옳은가”라고 질의했다.

31일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는 방송 장악을 둘러싼 여야 의원들의 대치로 두 차례 파행을 겪었다.

이효성 위원장이 “개인적으로는 독재자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표현이 꼭 김정은 찬양이 아니라 ‘적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자’라는 취지로 접근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답변했다.

신상진 과방위원장이 이 답변에 추가 질의하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사회자 역할을 맡은 과방위원장이 편파적으로 국감을 진행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과정에서 논점이 ‘김정은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맞춰지면서 방송 장악 이슈는 곧 색깔론으로 변질됐다. 국감장은 다시 고성으로 가득찼고 신상진 위원장은 2차 정회를 선언했다.

정회 후에는 KBS 이사회 인사 개입 문제가 국감장을 달궜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효성 위원장에게 이인호 KBS 이사장과 조우석 이사 해임을 촉구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에 자유한국당과 조원진 대한애국당 의원이 KBS에 대한 압력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에 윤종오 민중당 의원, 추혜선 정의당 의원까지 목소리를 내면서 다시 장내는 서로 간의 비판으로 얼룩졌다.

방송통신위원회 아닌 ‘방송위원회’ 국감

이날 방통위 종합감사에서 통신 부문에 대한 질의는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이 언급한 이동통신사의 단말기 할부수수료 할인, 윤종오 민중당 의원이 일부 통신사가 대리점을 상대로 갑질을 벌인 것을 지적한 게 전부였다. 방통위는 단말기 유통제도 개선, 모니터링을 통한 시장 안정화, 통신시장 불공정행위 개선 등을 정책적 목표로 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의원들에 질의는 나오지 않았다.

앞서 녹색소비자연대는 민생과 밀접한 가계통신비 인하 논란에 소홀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녹소연은 “지난해 6월 출범한 과방위는 1년 2개월이 지나도록, 법안 소위를 단 2회만 개최했다”며 “회의 개최 횟수도 13개 상임위 중에서도 꼴찌”라고 비판했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31일 방송통신위윈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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