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정명섭 기자] 1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정감사. 국감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차지한 단어는 ‘단말기 완전자급제’다. 이는 통신서비스와 단말기를 따로 판매하도록 강제하는 것으로, 두 부문의 경쟁 활성화가 곧 가격 인하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가 깔려있다.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최근 급부상한 이유는 정부의 인위적 통신비 인하 논란 탓이다. 여기에 통신서비스 요금 뿐 아니라 단말기 가격 거품도 빼야 한다는 주장이 더해지자, 완전자급제는 마치 통신시장의 모든 갈등과 문제를 해소하는 ‘만능 해결사’로 조명받고 있다.

실제로 국감장에서 여러 의원들은 단말기 완전자급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의원은 단말기 완전자급제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과 김용수 2차관을 소극적인 공직자 혹은 죄인처럼 취급했다.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선택약정 할인폭 인상, 보편요금제 도입 등은 다 논란이 되고 있다. 이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자급제밖에 없다”고 강조했고,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또한 단말기 완전자급제 도입 시 “통신비 절감효과가 대단히 크다”고 확언했다.

단말기 완전자급제 도입 시 예상 효과 (사진=박홍근 의원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정부가 단말기 완전자급제를 도입할 준비를 하지 않는다고 장관에게 호통을 치기도 했다.

김성태 의원은 “단말기 완전자급제 관련 기사의 댓글을 보면 90% 이상이 긍정적”이라며 “자급제 도입 검토하고 공청회도 여는 등 일하는 모습을 보여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도 단말기 완전자급제 도입에 동조했다.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이론대로 통신서비스와 단말기 가격을 모두 내리고, 통신 유통 시장을 투명화하는 묘안이라면 당연히 도입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론과 현실의 간극은 분명 존재한다. 단말기 완전자급제는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 폐지를 전제로 한다. 이 경우 단통법에서 명시한 공시지원금과 선택약정 요금할인 제도 등이 사라진다.

또한 현재 이동통신사는 삼성전자 등 제조사로부터 대량으로 스마트폰을 사들일 때, 조금이라도 낮은 가격에 들여올 수 있는 협상력을 발휘한다. 이동통신사가 지금과 같이 통신서비스와 단말을 묶어 파는 게 소비자에게 더 이익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단말기 완전자급제 도입의 기대효과대로 이동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사가 각각 통신서비스 요금과 단말기 가격을 자발적으로 내릴지도 미지수다. 이동통신 3사 독과점 구조인 우리나라 통신시장에서 요금제 경쟁을 벌였던 사례가 많았던가. 단말기 시장 역시 국내 시장 점유율이 70% 이상인 지배적 사업자 삼성전자의 영향력이 더 커져 출고가는 요지부동할 수 있다. 이미 애플은 수요와 공급 원리가 아닌 생산자 중심으로 가격을 설정하고 있다. 그래도 아이폰은 높은 판매 실적을 올리고 있다.

국감에서 기업인 증인으로 참석한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애플은 아이폰 가격을 수요에 의해 정하지 않고 본인 스스로 책정하기 때문에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도입돼도 단말 가격이 내려가지 않을 우려가 있다”고 증언했다.

세계 어느 나라도 단말기 완전자급제를 강제하고 있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각국의 통신시장은 우리나라와 같이 이동통신사가 단말과 통신서비스를 묶어 팔기도 하고, 소비자가 직접 공기계를 구해 개통하기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중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참고할 시장이 없다는 것은 단말기 완전자급제의 실효성에 의문 부호를 붙인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도입한 단통법이 온갖 비난을 받았던 것을 보라. 주요 국가가 제도화하지 않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자급제 환상’에 씌인 국회의 압박에도 과기정통부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건 바람직하다. 단말기 완전자급제를 ‘일단 한 번 해보자’는 식으로 접근했다간, 통신 시장을 둘러싼 논란만 더 키우는 제2의 단통법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이번 달 과기정통부는 가계통신비 인하를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를 꾸린다. 검토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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