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언론계에 몸담고 있는 한 선배와 식사를 했다. 자연스럽게 IT업계의 현실에 대해 토로하게 됐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개발자의 처우 문제에 대한 얘기를 하다 화제가 자연스럽게 소프트웨어(SW) 업계 현실로 넘어갔다. 그 자리에 마침 들고 갔던 음료수인 ‘옥수수 수염차’를 보더니 그 선배 한마디 꺼낸다. 옥수수 수염차와 엮인 서글픈 얘기가 있다고. 바로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거룩한 말을 먼저 꺼내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그 선배는 지난 9월 중순 국내 중견 소프트웨어(SW)업체 사장들과 저녁자리를 했다고 한다. 그 선배가 설명한 당시의 상황을 옮겨보면, 당시 참석자들은 추석을 앞두고 덕담을 위한 자리여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모 교수의 학력위주, 대선 후보 선호도 등 어느 술자리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들을 주로 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술집 주인이 서비스라며 요즘 시중에서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는 옥수수 수염차를 내왔다. 그런데 참석자 중 성품이 깔끔하기로 유명한 한 사장이 음료수를 단숨에 마시더니 일행의 눈과 귀를 한 번에 휘어잡을 정도로 음료수 캔을 탁자에 내리쳤다. ‘무엇인가 거슬리는게 있는 것인가’, 일행들은 서로 눈만 멀뚱 멀뚱 쳐다볼 때 그 사장이 한 말이 걸작이다. 

그 사장은 “이 옥수수 수염차가 대단하다. 옥수수 수염차 시장 1위 브랜드다. 회사는 이것 하나로 연간 수 십 억원을 이익을 낸다. 그런데 SW는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SW 시장에서 1위하는 업체들 봐라 적자 안내면 다행이다. 지식산업이라고 하는 SW가 옥수수 수염차보다 못하단 말인가”라며 허공을 쳐다봤다.  참고로 옥수수 수염차 1위 브랜드인 ‘○○옥수수수염차’는 지난해 7월에 출시돼 출시 6개월인 올해 1월에 1000만병(340㎖ 기준) 판매를 돌파한데 이어 9월에 1억병을 넘어섰다. 연말까지 1억3000만병이 팔릴 거라고 한다. 말 그대로 대박이다.

선배를 가슴 아프게 한 것은 그 사장의 다음 이야기였다. “2000년 초에 창업해 지금까지 하루도 발 뻗고 자본적이 없다. 고객이 부르면 달려가고 직원들 제품개발도 독려했다. 하지만 매년 받아든 경영실적은 초라했다. 창업 초기는 적자였고, 2∼3년전부터 적자에서 벗어났지만 아직도 먹고 살기 힘들다. 한 길만 보고 한 우물만 팠다. SW의 미래를 믿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 신념에 균열이 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 일을 전하며 그 선배가 놀란 것은 당시 옥수수 수염차를 내리쳤던 사장이 SW업계에서 제법 성공한 최고경영자(CEO)측에 속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 사장은 일에 대한 열정도 강하고 사람도 좋아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고객들도 그의 성실함고 인간성을 높게 평가해 가격을 후하게 쳐준다는 후문이다. 무엇보다 그의 회사는 특정분야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그가 음료수보다 못한 SW를 판다는 것에 대해 자괴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우리 SW 업계의 서글픈 현실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일일까. 생각해보면 SW를 제값주고 사지 않으려는 기본 문화부터 잘못됐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지적재산권이 제대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 SW 개발을 아무리 잘했다고 해도 라이선스를 제값으로 받지도 못하는데다, 유지보수요율 4~5% 받기도 힘든게 현실이다. 이는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된다 해도 쉽게 변할 마인드가 아니다. 얼마나 심하면 외국계 SW 업체들조차도 국내에서 영업하기 힘들다고 하겠는가. 선배에게 이런 얘기를 듣는 순간 “고무신을 팔아도 SW보다는 나을 것”이라며 “해외에 본사를 옮기고 싶다”고 말한 한 국산업체 사장의 말이 떠오른다. 

정부가 앞장서 SW 산업을 육성한다고 소리쳐도, 국내 SW가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업계가 당장 이익을 내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다. SW도 최소한 특정분야에서 1위를 하면 먹고 살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 모두를 살릴 수는 없다. 그래도 가능성이 있는 업체, 기술력을 보유한 업체,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는 업체가 적자를 내서야 말이 되는가. 구수한 옥수수 수염차가 그날만은 씁쓸했다. 

성현희 기자 ssung@ittoday.co.kr

[IT TODAY 2007년 10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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