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정명섭 기자] 보편요금제 도입 등 정부의 가계통신비 절감 대책으로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는 국내 알뜰폰업계가 ‘일본 시장 배우기’에 나섰다. 최근 일본 이동통신사가 알뜰폰 사업자의 저렴한 요금제를 의식해 자발적으로 통신요금을 낮추는 등 알뜰폰업계의 위상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알뜰폰업계는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 보다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12일 이동통신업계에 따르면 황성욱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이하 알뜰폰협회) 부회장 등 알뜰폰협회 관계자들은 최근 일본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일본 알뜰폰업계의 성장 사례를 학습하기 위해서다.

일본 2위 이동통신사 KDDI는 지난 7월 10일부터 단말기지원금을 없애는 대신 월 통신요금 1980엔(한화 약 2만원)에 데이터 1GB를 사용할 수 있는 요금제를 출시했다. 이를 중심으로 월 3GB 데이터를 제공하는 요금제는 기존 요금제 대비 720엔 가격을 낮춘 5480엔(약 5만6000원)에, 월 20GB의 속도 제한없는 데이터를 제공하는 요금제는 1500엔을 낮춘 6500엔(약 6만7000원)으로 단계적 인하를 실시했다. 전체적으로 요금 인하 수준은 20%에 달한다. 당시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이동통신사가 내놓을 수 있는 최대 할인폭”이라고 평가했다.

다나카 KDDI 회장이 지난 7월 10일 기자회견에서 1980엔에 월 데이터 2GB를 제공하는 요금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니혼게이자이신문)

이동통신사의 자발적 통신비 인하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현재 정부가 월 통신요금 2만원에 음성 200분, 데이터 1GB를 제공하는 보편요금제 도입을 위한 법안을 입법예고하는 등 인위적으로 요금을 낮춰 이동통신사의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KDDI가 이같은 서비스를 자발적으로 내놓은 결정적인 이유는 알뜰폰 사업자의 저가 요금제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자국의 이동통신시장에서 알뜰폰의 점유율은 2009년 2.2%, 2011년 4.7%, 2013년 9.0%, 올해는 약 10%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가입자는 1500만명에 달한다. 현재 우리나라 알뜰폰 점유율 11%, 가입자 700만여명을 기록한 것과 유사하다.

(자료=일본 총무성)
(자료=일본 총무성)

현실은 이통사에 종속된 알뜰폰...정부의 인위적 통신비 인하에 '벼랑 끝'

그러나 국내 알뜰폰업계는 매출 기준 점유율 3%에 불과하고, 알뜰폰업계 1위 CJ헬로비전을 제외하고 사실상 이익을 내는 곳은 없는 실정이다.

일본의 알뜰폰업계가 이동통신사의 요금을 내릴 정도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MVNE(Mobile Virtual Network Enabler)의 존재다. MVNE는 이동통신사(MNO)와 알뜰폰(MVNO)의 중간 단계의 사업자로, 알뜰폰 사업자 대신 이동통신사들과 망 임대 협상을 하고 과금 시스템 구축과 운영, 콜센터 운영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다. 일본통신, NTT 컴즈, NEC, 히타치 제작소 등의 업체가 지난 2007년부터 이같은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들은 기존 알뜰폰 사업자들 뿐만 아니라 신규로 진입하는 업체들을 지원함으로써 알뜰폰업계의 건강한 경쟁을 유발한다. 이는 이동통신사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알뜰폰업계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국내 알뜰폰업계가 우리나라도 일본과 같이 경쟁지향적인 시장이 조성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알뜰폰 시장은 정부의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으로 인해 고사 위기에 몰렸다. 통신비 절감 대책 중 하나인 보편요금제 도입은 기존 알뜰폰 사업자들의 영역으로, 이동통신사가 보편요금제를 내놓게 되면 가입자 이탈은 불가피하다. 현재도 정부가 선택약정 요금할인율 인상(20%→25%), 지원금 상한제 폐지 등을 추진하고 있어 알뜰폰을 사용할 유인은 점차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가격경쟁력이 장점인 알뜰폰업계는 더 저렴한 서비스를 내놓을 수 밖에 없는데, 이를 위한 망 도매대가 인하 협의는 지지부진하다. 정부의 통신비 절감 대책으로 금전적 피해가 예상되는 이동통신사가 경쟁자인 알뜰폰을 위해 우호적으로 나올 리 만무하다. 즉, 정부의 통신비 인하 대책은 이동통신사의 부담이 되고, 이는 알뜰폰의 생존 위기 등의 부작용으로 이어지는 이중고를 유발하고 있다.

실제로 이동통신사와 알뜰폰사업자간 망 도매대가 인하 협의는 당초 지난달 말에 마무리할 예정이었으나 아직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망 도매대가 인하 협의의 진행속도가 생각보다 더디다”라며 “이른 시일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뜰폰업계 관계자는 “매년 반복되는 전파사용료 감면, 망 도매대가 인하 등 소모적인 갈등으로는 알뜰폰 생태계가 성장할 수 없다”며 “특히 정부가 인위적으로 가계통신비를 낮추는 정책을 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알뜰폰업계가 체감하는 위기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시장 경쟁 활성화 측면에서 알뜰폰을 도와주는게 장기적인 해법”이라고 전했다.

한편 알뜰폰협회는 일본 알뜰폰 시장이 주는 시사점을 정리해 과기정통부에 전달할 예정이다.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