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김동규 기자] 정부가 가상현실(VR) 기술기반 4차산업혁명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민간 VR사업자들 중 눈에 띌만한 성과가 나온 업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배경 속에서 VR업계는 ‘게임·영상’을 넘어 ‘국방·의료·교육’등 틈새시장 공략에도 나서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킬러 콘텐츠를 꾸준히 생산하고 산업 간 융합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전세계 VR시장은 성장 전망치가 낮아지는 등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디지캐피털은 2015년에 2020년까지 300억 달러(33조 9100억원)로 성장이 가능하다고 보였던 전 세계 VR시장 전망을 올해는 2021년까지 250억달러(28조 265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하향 전망됐다.

착용하기 불편한 HMD(Head Mounted Display)에 더해 이렇다 할 킬러 콘텐츠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배경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VR게임이나 콘텐츠에 대해 딱히 들어본 콘텐츠가 없다는 것은 아직까지 즐길거리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의 방증”이라며 “착용하고 나서 머리카 헝클어지고 일부 체험자는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등 착용감이 좋지 않다는 것도 VR이 생각보다 성장하지 못한 배경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용 VR이 제작되는 등 VR을 다양하게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시장 실패를 논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VR산업은 콘텐츠 부재와 불편한 장비 탓에 당초 예상 보다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플리커)

정부도 VR·AR(증강현실)을 차세대 산업으로 보고 지원을 늘리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지난 10일 가상증강현실 기술을 기반으로 4차산업 육성을 위해 ‘2017년 디지털 콘텐츠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추진키로 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VR·AR기술과 타 산업을 융합해 새로운 사업을 창출하는 것으로 국방, 이료, 제조 3개 분야가 대상으로 꼽혔다. 국방 분야에서는 AR·AR 기술을 군장비 정비 및 교육에 활용해 K21장갑차와 고정형 레이더 등 고도 군장비에 대한 수행능력을 향상시킬 계획이다. 또 현실감이 극대화된 VR기반의 사격훈련 등 가상전투훈련센터를 구축한다.

의료분야에서는 VR·AR기반의 실습 훈련을 통해 수술 교육과 훈련의 효율성을 높인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내시경 두경부 종쟝제거수술 훈련용 AR 시뮬레이터 개발과 인공 고관절 반치환술 훈련을 위한 시뮬레이터 개발 등이 거론됐다. 제조 분야서는 자동차 핵심 12가지의 부품정비와 관련된 실습을 위한 VR콘텐츠가 활용된다.

과기정통부는 앞으로 2년 동안 연구개발, 콘텐츠·서비스 개발·사업화지원 등에 280억원을 투입해 우수한 성과를 낸 컨소시엄에게는 최대 2년까지 추가 지원을 계획 중이다.

국내 VR시장 현황은

한국VR산업협회는 국내 VR시장이 2016년 1조 3700억원에서 2020년까지 5조70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의 ‘국내 VR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작년 기준 국내 VR시장에서 가장 많은 분야를 차지한 콘텐츠는 게임이 79.6%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그 뒤를 엔터테인먼트, 교육, 성인 순으로 나타났다.

또 업체들 중 31.1%는 현재 VR시장을 ‘시장진입기’로 판단했고, 23.2%는 ‘시제품 생산기’, 20.4%는 ‘기술 개발기’라고 판단해 아직까지 현장에서는 국내 VR시장이 성숙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편 콘텐츠 분야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중점 지원에서는 교육 분야 VR콘텐츠가 52.4%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그 뒤를 게임(46.6%), 엔터테인먼트(40.8%), 의료/건강(36.9%)순으로 나타났다.

유통업과 소매 시장서도 VR·AR확산

유통업과 소매업에서도 VR·AR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성공적인 VR·AR활용 비즈니스는 해외 사례가 많이 때문에 이를 참조해 국내 VR·AR비즈니스를 키울 수도 있다.

특히 온라인 쇼핑의 성장이 두드러지면서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마케팅 전략이 수립된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회사는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다. 이케아는 HTC바이브와 손잡고 이케아VR익스피리언스라는 쇼핑 앱을 선뵀다. 가상으로 사용자는 직접 가구를 배치해 볼 수 있고 직접 매장을 가지 않아도 어떤 제품이 있는지 체험해 볼 수 있다.

알리바바 역시 VR쇼핑 플랫폼인 바이플러스를 준비중이다. HMD를 착용해 마치 쇼핑몰에 와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판매자 역시 특징 있게 자신만의 상점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해 엘리자베스 아덴 등 화장품 기업도 AR을 통해 가상으로 화장을 해 볼 수 있게 만들고 구매까지 가능한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또 직접 탈의를 하지 않고 옷을 입을 수 있게 만드는 AR거울 등을 통해 오프라인 의류 매장에서도 새로운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이케아와 알리바바의 VR 콘텐츠 이미지 (사진=각사)

글로벌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인 KFC도 ‘더 하드웨이’라는 일종의 방탈출 게임을 만들어 닭을 요리하는 5단계의 관문을 VR로 완벽하게 수행해야 방을 나갈 수 있게 하는 콘텐츠를 만들었다. 닭을 검사하고 세척하고 가루를 뿌려 튀기는 과정을 실수 없이 수행해야 한다.

KFC가 만든 교육용 VR 화면 (사진=KFC)

페이스북·구글 등 글로벌 공룡들도 VR·AR 투자 활발

VR·AR관련 투자에는 글로벌 IT회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미국의 대표적인 IT기업인 페이스북과 구글의 행보가 눈에 띈다.

페이스북은 VR플랫폼 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독자적인 생태계 구축을 전략으로 VR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하드웨어를 강화하기 위해 2014년 VR전문기업인 오큘러스를 인수한 바 있다. 특히 전 세계 20억명이 사용하는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서도 VR콘텐츠가 유통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관련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페이스북이 작년 공개한 VR관련 10년 로드맵을 보면 초기 3년은 페이스북 생태계를 견고히 만들고, 향후 5년까지는 동영상, 검색, 인스타그램등 기존 서비스를 더욱 강화시킨다. 그러다가 향후 10년은 연결성(conectivity)를 기반으로 인공지능(AI)이 결합된 VR·AR 콘텐츠를 만들어 페이스북 내 VR·AR생태계를 완성하는 것을 로드맵으로 삼고 있다. 현재 페이스북은 자체적으로 VR전담팀을 만들어 SNS상에서의 VR기술에 대해 연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은 하드웨어적인 부분보다는 플랫폼과 이를 통한 VR생태계 구축에 방점을 찍고 있다. 모바일에서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둔 구글이 똑같은 전략을 VR시장에서도 활용한다는 것이다.

구글은 먼저 VR대중화를 위한 시도에 나섰다. 고가의 HMD에 비해 저렴한 카드보드를 통해 VR이용경험을 늘리는 데 주력했다. 이어 더 고품질의 VR콘텐츠를 위해 안드로이드 기반의 VR플랫폼인 데이드림을 발표하고 전용 VR기기인 데이드림 뷰도 출시한다. 이 기기는 삼성전자, LG전자, HTC, 샤오미 등에서 제조된 스마트폰과 연동될 예정이다. 즉 안드로이드 OS에서처럼 구글만의 VR생태계를 조성해 시장을 이끌어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타 산업과의 융합’서 성장 가능성 찾아야

국내 VR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타 산업과의 융합’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VR자체로만은 게임이나 영상 등에 치우쳐 해당 분야에서 킬러 콘텐츠가 나오지 않으면 성장을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VR관련 전문가들은 VR시장이 생각보다 더디게 성장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콘텐츠 다양화와 타 산업과의 융합이 잘 이뤄진다면 성장을 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군주 한국VR산업협회 신사업총괄 실장은 “현재 국내 VR시장은 B2B위주고 있고 B2C쪽에서 킬러콘텐츠가 나오고 있지 않다”면서도 “건설교통, 제조, 교육, 의료 등 IT산업을 타 산업에 융합해서 의미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시도는 꾸준히 있기에 장기적으로는 VR시장이 성장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도 “현재 VR기기가 가격적인 측면과 착용시의 불편함으로 확산 속도가 빠르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활용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며 “특히 교육 영역에서 텍스트만으로 학습하는 것에 비해 보고 들어 학습하는 VR이 활용 가치가 높다”고 분석했다.

타 산업과 VR기술의 접목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낸 사례는 많다. 의료 분야에서는 VR등을 활용해 의사들 교육과 환자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 미국 톨레도 대학에선는 VR콘텐츠로 해부학을 공부하고 있고 알베르타 대학의 경우 의료와 재활을 전공으로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VR이 활용되고 있다. 국내서는 분당 서울대병원이 2015년부터 VR교육시스템을 수술 분야 교육에 활용하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는 구글이 천문, 지질 분야에 카드보드 활용 앱을 만들어 교육용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도 가상 화상 탐사 프로젝트를 교육용 VR로 제작했다. 방송영상 분야에서는 프랑스 언론 르몽드가 파리 테러 묵념현장을 360도로 촬영해 카드보드와 기어VR전용 영상으로 배포했다. 뉴욕타임스는 정기구독자들에게 구글 카드보드를 지급하고 자체 제작한 VR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HMD 불편함 해소, 중소기업 진입장벽 낮추기, 대기업 관심 등이 흥행 열쇠 될 것

HMD기기 자체의 불편함 해결도 숙제다. 디스플레이 해상도, 반응속도, 무게, 음향 기술과 같은 부분에서 발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동작을 제대로 인지해야 하는 3D센싱 기술은 VR콘텐츠의 몰입감 향상을 위해 중요한 기술로 꼽힌다.

여기에 더해 중소기업들의 VR시장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노력도 VR시장의 확대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한 시간과 노력, 대규모 자본 등이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은 부족한 만큼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인찬 드래곤플라이 VR AR 센터장은 “HMD와 같은 디바이스 제작 비용은 점차 떨어지고 있지만 콘텐츠 제작 비용은 쉽게 낮추기 힘들다”며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 중소 기업이 VR제작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콘텐츠 제작 단계에서의 지원 뿐만 아니라 콘텐츠 유통 등에도 보다 많은 지원책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다는 점도 국내 VR시장 확대에 걸림돌로 지목됐다. VR기기와 콘텐츠를 동시에 개발해 생태계를 넓혀 가려는 외국 기업과는 달리 국내 대기업은 확실하게 VR콘텐츠 제작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소니, HTC, 오큘러스 등 해외 VR기기 제작 업체들은 콘텐츠 제작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VR로, HTC 바이브는 게임 플랫폼 스팀과 함께 콘텐츠 생태계도 만들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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