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정명섭 기자] 가계통신비 인하를 둘러싼 정부와 이동통신업계간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제로 레이팅'이 통신비 인하 대책으로 대두됐다. 하지만 제로 레이팅 활성화가 장기적으로 자금력이 있는 대형 콘텐츠 사업자만 살아남는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와 주목된다.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시민단체 오픈넷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우리나라 망중립성의 방향에 대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망중립성 이슈의 주요 쟁점인 제로 레이팅 활성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제로 레이팅이란 소비자가 특정 콘텐츠를 이용할 때 발생하는 데이터에 대해 비용을 부과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SK텔레콤은 현재 자사 고객이 포켓몬고를 하는 경우 데이터 사용량을 차감하지 않는다. 관련 비용은 제휴 게임업체 나이언틱이 대신 지불한다.

SK텔레콤은 망 운영‧관리 비용을 낮출 수 있고, 나이언틱은 포켓몬고 이용자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소비자는 포켓몬고 사용으로 유발되는 데이터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된다. 제로 레이팅 찬성파의 논리는 제로 레이팅이 활성화되면 이처럼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는 이동통신사 등이 타 사업자의 제휴요청을 불힙리하게 거부해 공정경쟁을 막거나 특정 이용자를 차별하는 행위를 하지 않으면 제로레이팅 서비스를 허용하고 있다.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시민단체 오픈넷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우리나라 망중립성의 방향에 대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왼쪽부터) 유승희 의원, 이내찬 한성대 교수, 박경신 고려대 교수, 송재성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장

그러나 이동통신사와 제휴를 맺지 못하는 중소 콘텐츠 사업자의 경쟁력은 더 떨어질 수 있다. 이는 향후 대형 콘텐츠사만 생존하는 생태계로 이어지고 이들 기업이 서비스 요금 인상으로 이용자에게 비용을 전가할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장기적으로 소비자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이동통신사가 가진 유무선 시장 지배력이 콘텐츠 업계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박지환 오픈넷 변호사는 “고속도로를 운영하는 한국도로공사가 자동차까지 판매한다고 가정해보면 제로 레이팅 서비스는 도로공사가 자사 자동차 구매 고객을 대상으로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를 해주는 것”이라며 “이동통신사와 같이 지배력을 가진 사업자가 경쟁에서 유리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로 레이팅으로 망사업자가 중소 콘텐츠 사업자를 약탈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가 제로 레이팅을 용인하고 있는데 공정경쟁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반면 정부는 제로 레이팅이 이용자의 편익을 증대하는 만큼 관련 서비스를 허용하되, 사후 규제에 초점을 맞춘다는 입장이다. 지난 8월 제로 레이팅 규제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 방송통신위원회는 향후 시장 동향을 관찰하면서 망사업자의 불공정 행위 여부 등의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겠다고 전했다.

송재성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경쟁정책과장은 “제로 레이팅은 사전에 일관되고 구체적인 허용기준을 정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라며 “불공정 행위 발생에 대해 모니터링을 하고 사후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종영 방통위 이용자정책총괄과장은 “망사업자의 이용자 이익 침해 등을 입증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며 “규제 근거가 마련됐지만 망사업자가 이용자의 이익을 어떻게 저해했는지 등의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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