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정명섭 기자] 9월 정기국회가 열렸지만 공영방송을 둘러싼 여야의 대치로 정부의 가계통신비 절감 대책의 일환인 단말기 지원금에 대한 분리공시제 도입은 논의의 첫 발도 떼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이해관계자는 분리공시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이 제도가 단말기 출고가 인하, 통신 유통시장 투명화 등의 효과를 거두려면 정부가 판매장려금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7일 국회와 방통위 관계자의 의견을 종합하면 9월 정기국회는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공식 일정상 오는 15일부터 각 상임위원회별 활동이 시작되지만 이 또한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여야가 MBC 사태 등 공영방송 정상화를 두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에 계류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과 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개정안은 방송 이슈로 논의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있다.

국회 한 관계자는 “공영방송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상임위 중 유일하게 결산국회도 하지 못했다. 관련 논의를 할 테이블 조차 마련되지 않고 있는 것”이라며 “10월 국정감사 세부 일정 마련과 증인채택 여부 등을 위해 9월 말에는 과방위가 열릴 가능성이 있지만 이 때도 통신 법안은 논의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에 방통위가 추진하고 있는 분리공시제 도입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분리공시제는 이동통신사가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지원금 중 제조사가 내는 몫을 별도로 분리해 공개토록 하는 제도다. 현행 단통법에서는 이동통신사만 단말기 출고가, 지원금, 출고가에서 지원금을 차감한 판매가격 등을 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방통위가 분리공시제 도입을 위해 추진해야 할 과제는 단통법과 관련 고시 개정이다. 현행 단통법 제4조 3항은 ‘이동통신사업자는 이동통신단말장치별 출고가, 지원금액, 출고가에서 지원금액을 차감한 판매가 등 지원금 지급 내용 및 지급 요건에 대하여 이용자가 알기 쉬운 방식으로 공시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 제조사 장려금이 포함된 경우에는 이를 별도로 공시토록 하는 내용을 신설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동법 제12조 1항에 ‘이동통신사업자가 (과기정통부‧방통위에) 제출하는 자료는 이동통신단말장치 제조업자별로 이동통신사업자에게 지급한 장려금 규모를 알 수 있게 작성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조항을 삭제해 이통사가 단말기 제조사가 장려금 정보를 담을 근거를 마련한다. 방통위는 이같은 안을 담은 단통법 개정안을 별도로 만들기보다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 통과를 시키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현재 분리공시제를 담은 단통법 개정안은 국회에 6건이 계류 중이다. 방통위는 이달 정기국회에서 분리공시제가 논의될 수 있도록 적극 어필한다는 방침이다.

분리공시제 도입은 스마트폰 출고가 인하→통신비 절감...정부-이통사 환영

방통위가 분리공시를 도입함으로써 기대하는 효과는 단말기 유통구조 투명화와 간접적인 단말기 출고가 인하다. 공시지원금 중 제조사의 마케팅 비용을 파악할 수 있게 되면 그만큼 단말기 출고가에 낀 거품을 제거할 수 있다는 바람이 깔려있다.

이동통신 3사 입장에서 분리공시제 도입은 정부의 가계통신비 인하 공세 속에서 금전적인 손해가 없는 유일한 대책이다. 이에 특별히 반대 입장도 없다.

단말기 제조사들은 2014년 단통법 도입 당시 분리공시제를 적극 반대했으나, 최근 LG전자가 찬성으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LG전자의 태세 전환은 삼성전자와 마케팅 비용 규모면에서 동등한 위치로 경쟁하기 힘들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스마트폰 부문에서 2015년 2분기 이후 현재 9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가고 있는 LG전자의 위기 타개책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LG전자의 분리공시제 도입은 제조사의 영업비밀 일부를 공개하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결국 삼성전자를 겨냥한 승부수로 봐야한다”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분리공시제 도입이 단말기 출고가 인하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스마트폰 가격은 신기술 등의 성능과 시장 상황에 맞게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동통신 3사와 LG전자의 찬성, 정부의 강한 도입 의지 등으로 인해 결국 수용하는 분위기다.

지난 7월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김진해 삼성전자 전무가 증인으로 출석해 “분리공시에 대한 정부 정책이 결정되면 따를 예정”이라고 과거보다 한 발 나아간 입장을 보였다.

실효성 거두려면 ‘판매장려금’ 규제도 포함해야

분리공시제는 해외 어떤 국가에서도 도입하지 않는 제도다. 주요 국가들의 사례가 없다보니 정책 효과를 예단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분리공시제의 실효성을 거두기 위한 생각은 이해관계자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이동통신 3사와 LG전자는 지원금만 분리공시할 것이 아니라, 대리점‧판매점에 제공되는 판매장려금도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동통신사와 제조사는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공시지원금 뿐만 아니라 유통점에 판매장려금을 지급한다. 삼성전자와 같이 막강한 자금력을 갖춘 사업자가 공시 대상이 아닌 판매장려금을 중심으로 유통시장을 장악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방통위는 판매장려금에 대한 규제안을 마련하기보다는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사후 규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용일 방통위 단말기유통조사담당관은 “제조사가 공시지원금을 줄이고 유통망에 지급하는 판매장려금을 확대해 불법지원금을 높일 우려가 있다”며 “지원금 지급 규모에 대한 조사를 강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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