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업의 이익 수준을 조사해서 해당 기업 제품의 가격을 내리도록 강제한다."

2017년 시장경제를 따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법적 근거도 없고, 상식선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사회주의 체제의 계획경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새 정부는 민생 공약의 일환으로 가계통신비 절감을 강조했다. 그리고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이동통신사업자의 통신요금 인하 방안을 가져오라며 미래창조과학부를 압박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미래부는 "민간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통신비를 정부가 개입 할 근거가 없다"며 난감해 하고 있다. 상황이 어떻건 간에 국정기획자문위는 10일까지 통신비 인하 방안을 가져 오라고 미래부에 요청한 상태다.

통신비, 즉 이동통신서비스 요금은 공공재인 전파를 임대해 제공하는 서비스인 만큼 정부의 시장간섭은 일정 부분 필요하다. 이 때문에 통신사업자는 관련법에 따라 정부(미래부)에 요금산정 근거를 제출하고 서비스를 해왔다.

국정기획자문위는 우리나라 통신비가 비싸다며 인하를 주장한다. 대통령과 새 정부의 공약 이행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다. 민생 공약 이행을 위해 민간기업에 손쉽게 압박이 가능하고, 가장 단기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통신비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2인 이상 가구의 월 통신비는 14만3720원이다. 전체 가계 지출에서 5.6%에 달한다. 식비와 교육비 다음으로 높다. 이 때문에 과거 정부가 들어설 때 마다 통신비 인하 공약은 필수 공약으로 늘상 포함돼 왔다.

민생 공약 이행을 위해서는 민간기업의 이익이나 영업기밀은 무시되고 있다. 심지어 이개호 국정기획위 경제2분과위원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통신사의 잉여이익 수준을 검토한 뒤 요금 인하 방법을 찾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정부가 민간기업의 장부를 들여다 보고 판단해, 기업의 이익이 높다고 판단되면 이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 대로라면, 식비와 교육비 일부도 정부가 나서서 강제적인 인하를 해야 한다. 국민 대다수가 먹고 가르치고 배우는 데 돈을 쓴다.

식재료를 생산하고 음식을 만드는 데에는 전기, 물, 가스 등 각종 공공재를 활용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식품기업에는 식자재 비용과 원가산정 방식을 일괄 조사후 제품값을 내려야 한다. 초중학교 의무교육이 실행되는 교육 분야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의무교육 검토를 떠나서, 민간영역에 속하는 사교육비 역시 직접 간섭해서 대형학원의 강의비나 등록비도 삭감하는 것이 진정한 민생 정책이다.

물론 식비와 교육비를 통신비와 비교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먹고 배우기 위한 서비스는 통신서비스 처럼 직접적인 공공재를 사용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 통신서비스업에 이처럼 강압적으로 요금인하를 주장하는 새 정부의 행태는, 마냥 민생을 위한 길이라고 보기도 거북하다.

(사진=픽사베이)

가계 지출의 5.6%, 실제 통신비는 그 절반...해외 비교해 낮은 수준

통신비가 대체 얼마나 비싸기에 새 정부가 이처럼 강하게 압박하는 것일까. 가계지출의 5.6%에 달하니 결코 싸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이 통신비의 절반 가량만이 순수 통신비용이고, 나머지는 단말기 할부금과 부가서비스 비용이 차지하니 이통사로서는 억울한 부분도 있다.

통신서비스는 단순 전화나 인터넷 이용을 벗어나서 개인적으로는 즐거움과 문화생활 영위, 또한 업무적으로는 높은 가치를 창출하는 데 이용된다. 비싸다고 정부가 민간기업에게 관여할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시장경쟁과 시장논리에 의해 적정한 가격이 매겨지고 인하돼야 한다.

이동통신업계에서는 우리나라 통신요금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비 15~40% 가량 낮다고 주장한다. 각 국가 마다 통신환경이 다르고 복잡해서 반드시 옳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나름의 데이터를 갖춘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자기자본이익율을 통신비 인하의 근거로 삼기도 한다. 이통3사가 평균 8%대에 달하는 자기자본이익율을 기록하며, 국내 상장사의 5%를 넘어서 수익성이 높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영업이익율을 놓고 보면 국내 상장사의 평균 8% 수준에 못미친다. 지난해 국내 이통사의 영업이익율은 7.2% 수준이다. 지난해 이통3사의 매출을 합치면 51조원이고 영업이익은 3조7222억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어떨까. 같은 기간 미국의 버라이존과 AT&T의 영업이익은 57조원, 중국의 3대 이통사는 24조원, 일본의 3대 이통사는 28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미국, 중국이야 시장 규모가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인구의 2배 수준인 일본과 단순비교하자면 7배나 낮다. 영업이익율도 미국 중국 일본 모두 두자릿수를 기록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통신비가 비싸냐 싸냐, 이통사가 필요이상의 수익을 내느냐 마느냐는 들이대는 잣대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주장을 펼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공약 이행을 위해 어떤 절차와 과정을 거치느냐다. 소비자에게 유리한 공약이니 민간기업은 잠자코 따르라는 식은 안된다.

다행스럽게도 국정기획위원회가 통신비 인하 공약 이행을 위해 논란을 빚자,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가 나섰다. 국회 미방위는 국정기획위와 미래부가 '기본료 폐지'에 대해 지나친 힘겨루기를 자제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생 공약 이행도 좋지만, 유독 통신비에 대해서 일방통행식 소통 행보를 보이는 모습은 논란만 키울 뿐이다. 민간기업 팔 비틀기로 단기 효과를 볼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중장기적인 차원에서의 협의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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