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통신비 인하' 논란이 어김 없이 뜨거워지고 있다. 예상했던 논란이고, 예상됐던 정부의 행동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국정기획위원회가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의 업무보고를 거부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강단이 있는 것이고, 어찌 보면 막무가내식 시장 통제다.

통신비 인하 공약과 그로인한 논란은 지난 십수년간, 정부가 바뀔 때마다 들고 나오는 단골 메뉴다. 이통사들은 사실상 공공재에 가까운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다. 필연적으로 정부의 시장 통제가 가장 잘 먹힌다. 정권은 국민들 살림살이 개선에 이를 적극 활용하면 가장 단기적이고 직접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가계 통신비 20% 절감, 박근혜 정부의 단통법 등 통신비 인하 등 논란은 언제나 뜨거웠다. 그리고 입고 먹고 사는 '의식주' 분야에서 못했던 서민정책을 가계통신비 쪽에서 생색을 냈다. 이번 정부의 해당 공약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밖에 없다.

월 1만1천원의 이동통신 기본료 폐지,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 폐지, 단말기 가격 분리공시제 실시 등의 공약은 소비자인 국민들에게 나쁘지 않다. 아니 좋다. 그렇지만 정치적 생색내기가 아닌 중장기적 관점에서 ICT 산업과 해당 업계에 대한 배려는 없다.

국내 이통사들의 경우 정부 지침에 발을 맞추기 위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행동에 앞서고 있다. 협력사와 관련 업계까지 수십만명의 일자리가 달려 있는 업종이다. 앞으로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이며, 동시에 막대한 미래 기술 투자로 우리나라 산업의 미래를 책임질 분야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산업적 논리로 기업들의 부당이익을 대변하고 싶지는 않다. 소비자들에게 부당한 이익을 편취하고 있는 기업들이라면 통신비 인하가 아니고, 퇴출돼야 함이 마땅하다.

중요한 것은 매번 이어지는 통신비 인하 정치 공약으로 소비자들의 살림살이가 얼마나 나아지느냐 하는 것이다. 과거에도 정부가 시장 통제에 나섰다. 가계 통신비를 절감했고, 그 수치를 전리품인냥 자랑했지만 막상 소비자들에게 돌아간 혜택은 한달에 불과 1천~2천원 수준이었다. 이통사들은 수익 감소를 호소했고, 결국 이것은 부메랑이 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된다.

최근 몇년간 수치상 가계통신비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통신비 인하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목적으로 수치상 통신비를 인하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사진=플리커)

통신 서비스는 이제 문화적인 차원에서 봐야 한다. 이동통신 서비스 수요자들은 전화와 인터넷 비용을 내고 정량적인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 아니다. 통신 서비스에 대한 소비 자체가 우리의 미래산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소비문화'인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소비에 드는 비용을 정부가 간섭하고 통제하는 것은 맞지 않다. 다만, 공공재에 가까운 서비스에 대한 최소한의 감시와 견제는 필요하다.

국정기획위가 미래부의 소극적 태도에 불만을 품을 수는 있다. 정부의 공약 이행을 위해서는 주무부처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미래부 공무원들이 '까라면 까는' 허수아비라면 응당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절차를 무시하거나, 입맛에 맞지 않다고 주무부처를 배척 하듯이 보이는 것은 권력의 남용처럼 보인다. 더구나 이렇게 밀어부치기 식의 추진이라면, 공약 이행 그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

소비자의 주머니 속에 몇천원 몇만원을 돌려주고 생색을 내기 보다, 우리나라 ICT 산업의 발전을 위해 협의하고 독려하는 정부가 잘하는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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