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안석현 기자] 김상조 신임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새 정부 주요 경제 사령탑에 자리 잡으면서 소재⋅부품 업계 고질적 납품가 ‘후려치기’ 관행이 뿌리 뽑힐지 주목된다.

삼성⋅LG 전자 계열사들은 매 분기별로 소재⋅부품 협력사 납품가격을 인하한다. 협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사실상 일방적 통보에 가까워 국내 중소기업 성장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됐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카메라모듈.(사진=파트론)

삼성⋅LG, 매 분기 최소 5~7% 단가인하

현재 삼성전자 내 각 사업부와 삼성디스플레이⋅삼성SDI⋅삼성전기 구매팀은 3개월에 한 번씩 협력사 공급 단가를 협상한다. 협상 당시 업황과 품목에 따라 인하율은 천차만별이지만, 대체로 3개월에 한번씩 5~7% 가격을 낮춘다. 연초 100원에 납품했던 부품이 연말이 되면 최소 90원 미만으로 가격이 내려간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협력사의 판가 인하 여력이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업황이 나빠진다고 분기별 판가 인하를 건너 뛰거나, 인하폭을 줄여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업황이 좋지 않을때 판가 인하폭은 더욱 커진다.

최근 삼성전자 내 사업부 중 실적이 가장 저조한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의 경우, 일부 부품에 대해 3개월이 아닌 2개월로 단가 인하 주기를 단축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협력사 입장에서는 판매량(매출)과 이익률이 동시에 줄어드는 이중고를 감내해야만 한다.

한 부품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협력사들이 대부분 삼성전자 매출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판가 인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업황이 좋지 않거나 출시된 지 만 1년이 지난 부품은 한 번에 10% 이상 가격을 내려버리는 경우도 일상”이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 걸린 삼성전자 갤럭시S8 광고. (사진=삼성전자)

이 같은 분기별 단가 인하 관행은 LG전자⋅디스플레이⋅이노텍 등 LG그룹 전자 계열사도 마찬가지다. 삼성⋅LG 양쪽에 납품하는 한 업체 대표는 “각 구매팀 실무자가 무조건 상대방보다 많이 깎아 달라고 으름장을 놓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영업이익 감소⟶R&D 투자 실기 악순환

이 같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납품가 조정 관행은 국내 소재⋅부품 산업이 고도화되지 못하는 걸림돌로 수차례 지적돼 왔다. 영업이익을 남기지 못하다 보니 연구개발(R&D) 투자를 실기(失機)하기 일쑤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소재⋅부품 업계서 영업이익 15%는 ‘마의 장벽’으로 통한다. 업력이 긴 중견기업들도 영업이익률 10%조차 넘기 힘들다.

지난 2015년 중소기업중앙회와 산업연구원이 공동 연구한 ‘제조 협력업체의 경영성과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는 이 같은 내용을 잘 보여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국내)의 영업이익률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5.7%에서 2009년 7.2%, 2010년 11.0%, 2011년 8.1%, 2012년 13.1%, 2013년 13.8%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 협력업체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4.6%, 6.4%, 7.2%, 4.5%, 4.2%, 4.2%로 오히려 후퇴한 것으로 파악됐다. 협력사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삼성전자와 비교하면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주요 삼성전자 협력사들의 지난 1분기 영업이익률.(자료=디지털투데이)

지난 1분기 삼성전자가 역대 두 번째로 높은 9조9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지만, 주요 소재⋅부품 업체들 실적은 이에 크게 못 미쳤다. 디지털투데이가 삼성전자 각 사업부 대표 협력사들의 1분기 실적을 분석한 결과, 반도체 분야 일부 소재 업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영업이익률 10%를 밑돌았다.

한 삼성전자 협력사 대표는 “영업이익이 남지 않으니 R&D 투자를 못하고, R&D 투자를 못하니 다시 경쟁에서 밀리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金 “납품단가 후려치기 감시”

삼성⋅LG 전자계열사 협력업체들이 새 정부 경제 정책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는 이 때문이다. 앞서 김상조 공정위원장 내정자는 지난 17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갑질 행위에 대한 조사⋅감시 권한이 강화되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재벌의 불공정 거래를 조사하는 조사국 부활은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재계 저승사자’로 불렸던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국은 과거 대기업의 부당 내부거래를 잡아내는 등 재계 불공정 거래를 개선하는데 기여했으나 지난 2005년 폐지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조사국 부활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공정위는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금융연수원에서 대기업 전담부서인 기업집단국 신설 등의 안을 담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업무보고를 진행했다. 기업집단국은 과거 조사국의 역할을 계승하면서도 한 단계 진화한 시장 감시자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김 내정자는 기자회견에서 "경쟁제한성, 소비자후생침해 등을 조사할 수 있는 경제분석 능력을 키울 것"이라며 "조사와 경제분석 기능이 결합된 조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칩 안테나.(사진=파트론)

한 부품 업계 관계자는 “치열한 IT 업계 경쟁 환경을 감안하면 합리적인 수준의 단가인하는 용인할 수 있다”면서도 “국내 소재⋅부품 업계 경쟁력이 낮아지면 결국 대기업의 글로벌 기술 경쟁력도 도태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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