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석현 기자.

“삼성과 LG가 TV 시장에서 처음으로 다른 배를 탔다.”

한 전자 업계 원로는 최근 TV 시장 구도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배불뚝이(브라운관) TV 시절부터 치열하게 경쟁해온 삼성전자와 LG전자지만, 둘은 항상 서로를 벤치마킹해 왔습니다. LCD로 가느냐, PDP를 육성하느냐 하는 갈림길에서 LCD에 집중 투자했고, 2010년 전후로 발광다이오드(LED)를 TV용 광원으로 사용한 점도 동일했습니다. 기술 방식이 달라 서로 비방전까지 벌였지만, 3차원(3D) TV를 앞세울 때도 두 회사는 늘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올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TV 시장에서 분명하게 서로 다른 노선을 택했습니다. LG전자가 2014년부터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어 온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시장에 삼성전자가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는 OLED TV 개발 프로젝트를 연구소 선행개발로 넘기고, 더 이상 양산을 위한 개발은 진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OLED TV 개발을 담당했던 조직도 크게 축소됐습니다. 적어도 향후 4~5년간 ‘삼성전자 OLED TV’를 볼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습니다.

대신 삼성전자는 퀀텀닷(양자점)을 발광원으로 활용한 ‘QLED TV’를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나섰습니다. QLED TV는 삼성전자가 ‘SUHD TV’로 명명한 ‘퀀텀닷 TV’와는 완전히 다른 제품입니다.

퀀텀닷 TV는 퀀텀닷 시트(필름)를 LCD TV에 삽입해 색재현성을 높인 ‘고급형’ 모델입니다. 이에 비해 QLED는 퀀텀닷이 전기에너지를 받아 직접 빛을 내는 제품입니다. 퀀텀닷 하나하나가 개별 화소(픽셀)가 되어 화면을 구성하는 원리입니다. 구현만 된다면 수분과 산소에 약한 OLED TV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이상적인 TV입니다.

그러나 QLED TV를 양산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구만리입니다. 소재도 장비도 공정기술도 어느 것 하나 준비된 게 없습니다. QLED TV는 ‘꿈의 TV’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데, 어쩌면 진짜 꿈속에서나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조소(嘲笑)도 나옵니다.

주목할 건 삼성전자의 움직입니다. 삼성전자는 연일 퀀텀닷, 혹은 QLED 띄우기에 바쁩니다. 삼성전자가 출시 전 신제품과 관련해서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라도 절대 공식 확인을 거부해왔다는 점에서 이례적입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회사 차원에서 QLED TV와 관련한 보도 참고자료까지 뿌렸습니다.

이는 소니⋅하이센스⋅TCL 등 아직 OLED TV 진영에 발을 담그지 않은 주요 TV 메이커에 대한 선전포고용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LG전자가 연일 OLED TV 알리기에 고군분투하는 와중에 TV 시장 3~5위를 점유하고 있는 이들 3사 중 어느 한 곳이라도 OLED TV 띄우기에 나서면 TV 시장 전체가 OLED로 급선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OLED TV 진영 불참을 선언한 삼성전자로서는 가장 원치 않는 시나리오입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삼성전자의 예상이 맞아 떨어지고 있습니다. 아직 준비도 안 된 QLED TV지만, 이를 앞세워 OLED TV의 수명 등 단점을 부각시킬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에 늘 고전해왔던 소니⋅하이센스⋅TCL로서는 1위 업체가 전혀 다른 방식의 TV를 개발 중이라는 사실 하나로 OLED TV 진영에 참여하기가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아직 이들 3개 업체가 ‘OLED TV 얼라이언스’에 참여했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습니다.

TV 사업 시작 이후 처음으로 다른 배를 타게 된 삼성전자와 LG전자, 5년 뒤 TV 시장에서 활짝 웃고 있을 회사는 어느 쪽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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