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과 2016년은 2차전지 업계에 상징적인 해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독일 폴크스바겐 ‘디젤 게이트’는 의도치 않게 친환경 자동차 개발 붐에 기름을 부었다. 폴크스바겐이 전기차 시대 도래를 3년 앞당겼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친환경 자동차 시장 성장은 2차 전지 업계에 더 없는 호재로 작용했다. 삼성SDI와 LG화학은 때맞춰 2015년 3~4분기 중국 전기차 시장을 겨냥한 배터리 공장 가동에 들어갔다. ‘천우신조(天佑神助)’처럼 보였다.

행운은 길게 가지 않았다. 올해 1월 들어 상황이 급반전됐다. 중국 정부가 삼원계 배터리(NCA⋅NCM을 양극재로 사용한 제품)에 대한 보조금을 중단했다. 안전 문제를 들었지만, 사실상 한국⋅일본 배터리에 대한 견제용이었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성장한 자국 시장을 해외 업체와 나눠 먹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독일 폴크스바겐의 대표 차종인 골프. 폴크스바겐의 ‘디젤 게이트’는 전 세계적인 친환경 자동차 개발 붐을 촉진했다. /폴크스바겐 제공

굳게 닫힌 중국 시장

중국은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이다. 삼성SDI와 LG화학이 앞다퉈 중국에 전기차 전용 배터리 공장을 건설한 이유다. 그런 중국 시장이 문을 걸어 잠궜다.

중국 정부가 단기간에 삼원계 배터리에 대한 보조금 제한 조치를 철회할 가능성은 적다는 게 중론이다. 보조금 뿐만 아니다. 중국 재정부와 공업화신식화부 등은 각종 규제와 인증제도를 만들어 해외 배터리 업체들을 견제하고 있다. 적어도 리튬인산철(LFP) 양극재를 기반으로 배터리를 생산하는 자국 업체들 경쟁력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올 때까지는 현재와 같은 기조를 유지할 전망이다.

여기에 중국 정부는 자국 업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살포하던 보조금도 이제는 선별적으로 주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 보조금을 주되 옥석을 가리겠다는 뜻이다. 중국 재정부 관계자는 최근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업계 자생력을 기르기 위해 향후 신기술이 인정되는 친환경 자동차에 대해서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국 업체 보조금도 대상을 선별하는 마당에 해외 업체에 보조금 지급을 재개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중국 비야디의 4세대 순수전기차 ‘e6 400’. /비야디 제공

유럽⋅북미 시장에서 승부 내야

중국 시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남은 곳은 유럽과 북미 정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유럽⋅북미 시장에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성적표는 아직까지 괜찮은 편이다.

삼성SDI의 경우 유럽향 자동차용 배터리를 울산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데, 하반기 울산 공장 가동률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될 전망이다.

울산 공장에서는 현재 독일 폴크스바겐에 공급되는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용 28암페어(A) 배터리가 월 60만셀, BMW 전기차(EV)용 94A 배터리가 월 30만셀씩 생산 중이다. BMW PHEV용 26A 배터리도 월 50만~60만셀 정도 생산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향 배터리 생산량이 늘다 보니 삼성SDI는 헝가리에 자동차용 배터리 공장을 신설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LG화학은 북미 자동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선전 중이다. 전기차용 배터리 분야 전략적 파트너인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전기차 판매량이 호조세다. 이 회사가 생산하는 전기차 ‘볼트(Volt)’는 지난 7월까지 누적 판매량이 10만대를 넘어섰다. 북미 전기차 시장에서 단일 모델로 10만대를 판매한 것은 볼트가 최초다. 하반기에는 ‘셰비 볼트(Chevy Bolt)’가 출시될 예정이라는 점도 LG화학으로서는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GM 셰비 볼트. /GM 제공

스페셜티 배터리에 주목

이미 국내 배터리 업계가 물량 및 가격경쟁력으로 중국 업체들을 따돌리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비야디(BYD)⋅CATL⋅리센 등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매년 조단위 투자 금액을 쏟아 붓고 있는 것과 달리, 삼성SDI⋅LG화학의 배터리 사업은 가장 믿었던 중국 시장에서 브레이크가 걸렸기 때문이다. 당장 삼성SDI와 LG화학 배터리 사업의 흑자 전환 시기도 당초 예상했던 내년 하반기에서 내후년으로 미뤄질 전망이다.

업계서는 유럽⋅북미 시장 공략과 함께 중국 업체들이 따라올 수 없는 기술 개발에는 더욱 속도를 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해질을 고체로 만들어 폭발 위험성을 낮춘 전고체(All solid state) 배터리가 대표적이다. 최근 일어난 전기차 배터리 폭발 사고는 외부 충격 탓에 전해질이 밖으로 새어 나와 불이 붙으면서 대부분 발생했다. 삼성SDI와 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이 전고체 배터리 연구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다른 업체들이 시도하지 않는 독특한 설계로 주목받고 있는 업체도 있다. 최근 국내 배터리 중소기업 중 한 곳이 애플과 애플카용 배터리를 개발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회사가 만드는 배터리는 가운데가 비어 어묵처럼 생긴 ‘중공(中空)’ 배터리다. 방열 성능이 좋아 폭발 위험성이 그 만큼 적다. 그동안 IT업계서 게임체인저(Game changer) 역할을 자처했던 애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애플카 등장과 함께 자동차용 배터리 패러다임도 바뀔 수 있다. 현재 자동차용 배터리 시장은 원통형과 각형⋅파우치형 3개 타입이 경쟁 중이다.

음극재를 흑연 대신 에너지 밀도가 높은 실리콘 소재로 대체하려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실리콘은 충방전시 열팽창에 의해 기능을 상실하는 게 가장 큰 단점인데, 실리콘 소재가 파괴되지 않게 물리적인 코팅 처리를 하면 충방전 사이클 수를 늘릴 수 있다.

인조흑연 분말. /KIPOST

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이 물량 뿐만 아니라 안정성 등 기술에서도 상당 부분 국내 업체들을 따라 잡고 있다”며 “중국 시장에 미련을 버리고 유럽⋅북미 등 지역에 더욱 매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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