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술은 항상 논란을 낳는다.

한 쪽에서는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희망을 이야기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찻 잔 속의 태풍’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기존 산업 헤게모니를 가진 쪽은 새로운 기술이 한 여름 열대야처럼 지나가길 바라고, 기존 구도를 흔들고 싶어하는 혁신자 그룹은 기술이 바꿔놓을 새로운 질서를 원한다.

애플이 아이폰을 내놨을 때 당시 LG전자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애들 장난감’이라고 과소평가 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인류 대부분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꿔놓을 메가 트렌드 제품이었다.

물론 영화 아바타가 대박을 친 후 3D TV 붐이 일었다 꺼진 것처럼 소멸하고 마는 트렌드도 많다.

그렇다면 과연 자율주행차는 우리 삶을 바꿔놓을 메가 트렌드일까 아니면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트렌드에 불과할까.  

LG전자가 개발 중인 자율주행차 콘셉트./ LG전자 홈페이지 캡처

 

미국 대선, 자율주행차 산업에 중요 변수

정치와 산업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더욱 그렇다.

완성차 업체들은 안전 규제가 신설되는 것을 싫어하지만, 후방 부품 업체들은 규제가 새로운 기회다.

예를 들면 에어백 장착이 세계 주요 국가에서 의무화되면서 관련 시장이 크게 성장했다. 마찬가지로 후방 카메라 등 자율주행차 기술이 안전 규제로 채택될수록 새로운 시장이 태동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정치 권력과 산업 자본간 협력 관계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미국은 양당 체제가 몇 백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에는 석유∙철강∙자동차 등 굴뚝 산업 관련 업체들의 정치 자금이 몰렸고, 민주당에는 IT∙콘텐츠 등 신성장 산업 관련 업체들의 자금이 집중됐다.

어떤 당이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산업 정책 및 고용 기조도 뚜렷한 차이를 보여왔다.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임기 때는 IT∙헬스케어 등 신산업이 호황을 이뤘고, 부시 대통령 부자 임기 때는 석유화학 등 전통 산업이 나름 강세를 보였다.

그러나 자동차가 IT와 융합되면서 과거 구도가 달라지고 있다. 오히려 민주당 쪽에서 자동차 산업 발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실리콘밸리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차세대 자동차 산업을 손꼽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기존 자동차 업체들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선에서 방어적인 전략을 펴고 있다.

여론 조사 등을 보면 현재로서는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이 유력해 보인다.

힐러리 클린턴 선거 캠프 내 산업 정책을 설계할 인물로 스테파니 해넌이 손꼽힌다. 이 사람은 구글 고위 임원 출신으로 재직시 플랫폼 사업 등에서 두각을 나타낸 바 있다.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행정부에 입각할 가능성이 높다. 힐러리가 친 실리콘밸리 정책을 펼칠 것으로 보는 이유다.

힐러리는 과거 상원의원 시절부터 자동차 안전 규제에 관심이 많았다. 2018년부터 미국에서 출시되는 신차는 후방 카메라를 의무 장착해야 한다. 이 법안을 통과시킨 사람이 바로 힐러리다.

차량 후진 사고로 매년 상당수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는다는 이유에서다.

후방 카메라를 장착하면 사각이 없어져 사고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 그러나 신차 제조원가가 올라가기 때문에 완성차 업체에는 부담이다.

미국은 자동차 시장에서 독일, 일본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급부상했고, 구글∙애플 등 IT 업체들이 자율주행차 시장에 뛰어들면서 헤게모니가 바뀌고 있다. 미국 주도 차세대 자동차 시장이 열릴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안전 규제는 미국 자동차 산업 발전에 중요한 보호 무역 장벽이 될 수도 있다.

미국 정부는 내년부터 차량추돌방지시스템 의무화 법안도 발효한다. 전장 부품 등 관련 후방 산업이 크게 성장할 수밖에 없다.

LG전자가 개발 중인 자율주행차 콘셉트./ LG전자 홈페이지 캡처

 

미국, 자율주행차 산업 주도권 틀어 쥘 준비

많은 사람들이 자율주행차를 무인자동차와 동일시하고 있다. 물론 자율주행차 기술이 고도화된다면 운전자 개입 없이 차량 스스로 주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기술 수준으로 자율주행차는 지능형운전자지원시스템(ADAS) 정도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지능형 전조등∙사각지대 감지∙자동 긴급 제동∙동차선이탈 경고 등 기술이 ADAS에 포함된다.

도로 위 사고의 95%는 브레이크를 제대로 밟지않는 등 운전자 부주의로 인해 발생한다. 자율주행차 기술이 확산되면 이 같은 사고 발생 가능성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자율주행차 기술 레벨이 점차 높아질수록 IT 산업에 새로운 기회가 된다. 미국은 테슬라∙구글∙글∙애플 등 자율주행차 기술을 주도하는 업체들이 있고, 관련 SW 산업도 짜임새 있게 구성돼 있다. 차량 반도체∙지도 등 차량 SW∙센서 등도 후방 산업이 잘 돼 있다.

자율주행차가 확산되면 해당 산업을 중심으로 일자리 수요도 크게 늘어난다.

GM∙포드 등 전통 자동차 업체들이 차세대 자동차 확대로 타격만 입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바로 구글 등 IT 업체들이 개발한 차세대 자동차를 외주생산하는 것이다. 애플 아이폰 생산을 담당하는 폭스콘처럼 차량 주문자생산업체(OEM)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포드는 구글카 외주생산을 검토한 바 있다. 문제는 기존 완성차 업체들이 자존심을 버리고 새로운 산업 질서에 순응하느냐 여부다.

LG전자가 개발 중인 자율주행차 콘셉트./ LG전자 홈페이지 캡처

 

자율주행차 산업 개화 위해 뛰는 미국, 기는 한국

지난 4월 구글∙우버∙리프트∙포드∙볼보 5개 기업은 ‘더 안전한 거리를 위한 자율주행 연합(The Self-Driving Coalition for Safer Streets)’을 결성하고, 자율주행차 상용화 시점을 앞당기기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미국 연방 정부와 주정부, 시정부 교통 당국, 의회 의원들을 대상으로 자율주행차 운행에 필요한 규정∙제도 마련을 요청하기로 했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자율주행 차량 안전성과 장점도 적극 홍보할 방침이다.  

향후 자율주행차 개발에도 힘을 모으기로 했다.

구글은 인터넷과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한 지도와 내비게이션 기능을 제공하고, 인공지능(AI) 플랫폼도 마련했다. 차량 공유서비스 업체 우버와 리프트는 사용자와 차량을 연결시키는 시스템 및 빅데이터를 제공하기로 했다. 자동차 업체 포드와 볼보는 자율주행차 생산을 담당한다.

각 업체별로 진행하던 자율주행차 개발 및 서비스 발굴을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풀어내겠다는 전략이다.

5개 기업 연합은 현재 예상되는 자율주행차 대중화 시점 2025년보다 훨씬 앞당긴다는 목표다.

미국 기업들이 자율주행차 산업을 키우기 위해 힘을 모으는 것과 달리 국내 대기업들은 협력은커녕 오히려 견제하는 모양새다.

우리나라는 세계 IT 시장을 선도하는 삼성전자와 세계 5위 자동차 그룹 현대∙기아차가 있지만, 두 그룹은 서로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 거리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자동차 전장사업팀을 신설한 이후 현대∙기아차는 삼성 그룹 계열사와 단순 미팅조차 피하는 분위기다. 장기적으로 삼성전자가 경쟁사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협력 가능성을 아예 열어놓지 않겠다는 포석이다.

현대모비스는 삼성전자로 전장 부품 인력 유출을 우려해 경영진 차원에서 아예 미팅을 금지했다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다.

현대∙기아차 그룹의 이런 분위기를 의식해 올 초 이재용 부회장은 공식 석상에서 ‘삼성 그룹이 전기차 등 완성차 사업에 뛰어드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하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국내 자동차 업계와 협력이 어려워지면서 삼성전자는 인수합병(M&A) 등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얼마 전 불룸버그는 삼성전자가 피아트크라이슬러 자동차 부품 자회사 ‘마그네티 마렐리’ 인수를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마그네티 마렐리는 1919년 설립된 전통 있는 자동차 부품 업체다. 1967년 피아트 그룹에 인수됐다. 총 직원수 4만500명에 지난해 매출 73억유로를 달성했다. 자동차 엔터테인먼트∙텔레매틱스∙조명∙파워트레인∙서스펜션 등이 주력이다.

글로벌 자동차 부품사 순위에서 매출 규모로 약 30위권으로 평가된다.

LG전자가 개발 중인 자율주행차 콘셉트./ LG전자 홈페이지 캡처

 

삼성전자 자율주행차 사업, 반도체 경쟁력에 달렸다

자율주행차 산업을 주도하는 것은 단연 미국이다. 그러나 우리 기업도 기회는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적인 반도체 업체인 만큼 자율주행차 시장에서도 충분히 금맥을 캘 수도 있다.

삼성전자가 차세대 성장동력 사업으로 꼽은 차량 전장 부품 사업을 권오현 DS 부문 부회장 직속조직으로 배치한 이유가 뭘까.

오히려 차량 인포테인먼트 측면에서 보면 통신기기를 다루는 무선사업부가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수많은 내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한 후 삼성전자는 DS부문에 차량 전장 부품 사업을 배치했다.

과거 스마트폰 사이클을 놓칠 뻔한 삼성전자가 애플을 발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었던 것도 반도체 사업이 후방을 든든하게 뒷받침해준 덕분이다. 바로 스마트폰의 두뇌로 불리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기술이다.

차세대 자동차 시장에서도 AP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전기차∙스마트카도 스마트폰과 마찬가지로 초기 운영체제(OS)와 AP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드웨어 표준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구글 등 OS 업체들은 AP 및 자동차 업체와 긴밀한 파트너십을 맺고 주행∙인포테인먼트∙모듈 제어 등 기능을 결정한다.

자동차 전체를 아우르는 플랫폼을 바탕으로 다양한 카메라 센서, 칩셋을 연계한 설계가 이뤄진다. 차량 내 모든 장치가 OS 및 AP와 연계되기 때문에 창문 개폐부터 배터리 효율까지 소프트웨어로 제어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차량 AP를 공급하면서 여기에 최적화된 카메라모듈과 센서, OLED 디스플레이 등 부품뿐 아니라 2차 전지까지 통합 솔루션 형태로 공급할 수 있다.

현재 신차 한 대당 적용되는 전자제어장치(ECU)만 해도 백 여개에 달한다. 차량 반도체 원가 비중은 300달러 수준으로 매년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에 새로운 기회가 열린 셈이다.

 

자율주행차 시장 내 ‘다크호스’...국내 강소기업도 주목

삼성전자 외에도 자율주행차 시장에서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높은 국내 강소 기업들이 적지 않다.

차세대 자동차에서 유력한 기술 중 하나가 바로 라이파이(LiFi)다. 라이파이는 LED 플리커를 주파수로 인식해 통신하는 원리다. 가시광통신(VLC)이라고도 불린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삼성전자, 유양디앤유 등 기업들이 라이파이 관련 핵심 특허를 대거 보유하고 있다.

주파수 대신 라이파이로 통신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고, RF로 인한 노이즈 및 전자파 피해 등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라이파이는 이론적으로 와이파이(WiFi)보다 100배 빠른 고속 통신을 구현할 수 있다.

국내 기업 유양디앤유는 LG전자∙현대모비스∙LG이노텍 등 대기업과 손잡고 라이파이 상용화에 힘쓰고 있다. 라이파이를 차량 전조등에 적용해 추돌방지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는 솔루션을 2~3년 전부터 개발 중이다.

향후 도로에 장착된 LED 가로등과 차량간 라이파이로 통신하면서 비용은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도 주목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라이파이는 애플도 주목하는 차세대 통신기술이다. 애플은 무인자동차 개발뿐 아니라 가상현실(VR) 기기에도 라이파이 기술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얼마 전 차기 아이폰용 AP에 라이파이 소스코드가 발견돼 외신에서 이슈가 된 적도 있다.

비디오 코덱 설계자산(IP)을 NXP 등 차량 반도체에 공급하는 칩스앤미디어도 자율주행차 시장에서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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